잘하는 사업만 고집…매출 반토막난 도시바

입력 2022-05-11 17:29   수정 2022-05-12 01:54

지난 10일 소니그룹의 2021년 실적을 온라인으로 발표하는 도토키 히로키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부사장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날 소니그룹은 2021년 영업이익이 1조2023억엔(약 11조7800억원), 매출은 9조9215억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일본 전자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1조엔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잔칫집 분위기여야 할 실적발표회에서 CFO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 건 지난해를 정점으로 소니의 수익성이 꺾이고 있어서다. 소니의 올해 영업이익은 1조1600억엔으로 4% 감소할 전망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크게 늘었던 ‘집콕 수요’가 줄어드는 영향이란 분석이다. 특히 지난 수년간 소니의 실적을 지탱한 게임과 영화 사업의 영업이익이 각각 12%와 54%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日 전자업계의 오랜 꿈 ‘매출 10조엔’
영업이익은 줄지만 올해 매출은 11조4000억엔으로 1946년 창업 이후 처음 10조엔을 넘어설 전망이다. 매출 10조엔은 일본 전자업계의 오랜 꿈이다. 1918년 창업한 소니의 라이벌 파나소닉은 매년 매출 10조엔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파나소닉의 지난해 매출은 약 7조3000억엔으로 30년 전인 1991년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매출이 7조엔대로 떨어진 2016년 파나소닉은 매출 10조엔 목표를 철회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08년 매출 100조원, 2012년 매출 200조원을 넘어섰다. 1994년 창업한 아마존은 21년 만인 2015년 엔화 기준으로 매출 10조엔을 돌파했다. 아마존이 21년 만에 넘어선 매출 10조엔의 벽을 일본 전자기업들이 100년 넘게 못 넘는 이유를 와카바야시 히데키 도쿄이과대학 교수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사업에 안주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트라이크존 경영’ 도시바 매출 뚝
JP모간 등 외국계 증권사에서 오랫동안 전자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와카바야시 교수는 일본 기업의 경영 전략을 ‘스트라이크 존 경영’으로 묘사한다. 일본 기업들이 제품 수명은 5~10년, 판매 수량은 수천만에서 1억 개 정도인 ‘스트라이크 존’ 분야에 강점을 보이는 반면 여기에서 벗어난 분야에서는 약하다는 것이다. 워크맨, 플레이스테이션, 각종 가전제품 등 한때 일본 전자기업들이 석권한 제품은 모두 스트라이크 존 사업 영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시바다. 1960년 일본 최초의 컬러TV, 1985년 세계 최초의 노트북 등을 개발한 혁신 기업이었지만 스트라이크 존 밖의 사업에는 취약했다. 그 결과 오늘날 도시바의 매출은 3조엔대로 10년 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스트라이크 존 경영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대신 기업 환경 변화에 둔감한 약점을 갖고 있다. 일본 전자 대기업들은 디지털과 스마트폰 시대를 외면했다가 2010년대 삼성전자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2020년대에는 플랫폼 시대로의 전환에 뒤처지고 있다고 와카바야시 교수는 지적했다.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제조기업과 고객 관계는 1 대 1로 단선적이다. 반면 기업과 고객의 관계가 1 대 다수인 플랫폼 사업은 시장이 급격히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를 낼 수 있다. 아마존의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도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20여 년간 아마존 매출은 연 평균 28% 증가했다. 게임, 영화 등 스트라이크 존 밖을 적극 공략한 소니의 연 평균 매출 증가율은 13%였다. 반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지 못한 파나소닉의 증가율은 0%였다. 현 상태대로라면 30년 뒤 파나소닉과 아마존, 소니와의 격차는 각각 1645배와 39배 벌어질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예상했다.

와카바야시 교수는 “소니가 매출 10조엔 돌파를 앞둔 것은 비주력 사업을 팔아 신성장 동력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교체 방식의 사업 재편에서 벗어나 플랫폼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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