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국내 언론에서도 양자과학기술을 많이 다루면서 우리 사회도 양자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폭 넓어졌다. 이런 사회적인 인식 변화에 따라 정부에서도 새로운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시작한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는 정책을 바라보면, 양자물질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필자로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양자과학기술의 가시적인 발전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뤄진 양자컴퓨터 개발이다. 이런 양자컴퓨터는 지난 20년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뤄 이제는 양자볼륨이 100큐비트를 넘어서는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업체만 해도 IBM, 아이온큐(IonQ), 하니웰(Honeywell) 등이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양자우월의 시대를 달성하려면, 아무리 보수적으로 봐도 큐비트의 숫자가 1만을 넘어서야 하기에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양자과학기술은 지난 20~30년의 발전을 거치면서 이제 커다란 변혁기에 접어들고 있다. 양자컴퓨터 개발이 목표였던 단계에서는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자컴퓨터가 현실이 되고 상용화가 시작된 현시점에서는 양자컴퓨터의 활용을 포함한 포괄적인 응용에 정책의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발표된 이 분야의 논문과 특허를 조사해보면, 한국은 양자과학기술 분야 연구경쟁력이 대략 세계 15~20위권이라는 것이 공통된 결론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서둘러서 이 분야에서 앞선 나라를 따라잡아야 한다. 지금 양자과학기술 발전의 새로운 전환기가 도래했다는 것은 이 분야 진출이 늦었던 한국에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 비록 지난 20년 동안 이뤄진 양자컴퓨터 구현에서는 한발 뒤처졌지만, 새로운 국면이 된 응용연구는 미국, 중국과 큰 시간적 차이가 없이 뛰어들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에게 ‘당신이 하는 연구가 어떻게 양자과학기술이냐?’고 묻는다. 양자과학기술 발전의 1단계에서 통할 질문만 해서는 우리는 영원히 추격자에 그칠 뿐이다. 미래지향적 양자과학기술 육성과 필요한 정책을 말하는데 원조 논쟁을 할 필요도 시간도 없다. 무엇보다 우리의 장점과 잠재력까지 냉정히 따져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 제조업이 압축 성장을 했기에 세계 최고가 된 경험을 깊이 새겨야 한다. 또한 불과 몇 년 전에 세계 최고인 한국 반도체 공급망에 문제가 생겨 산업 전체가 순식간에 위기를 겪는 것을 봤다. 뒤처진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은 앞선 자들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거울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자과학기술 정책을 입안하고, 또 현장에서 연구와 적용하는 데 유연한 사고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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