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 부족해 결국 마통 씁니다"…기러기 아빠 '한숨'

입력 2022-05-12 14:09   수정 2022-05-12 17:26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해 가난한 미국 유학생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기러기 아빠 등 학부모들의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원화로 환산한 물건 결제 가격이 오르자 해외 직구를 포기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12일 외환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장중 1291원까지 오르며 5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했다. 작년 초 달러당 약 1100원과 비교하면 1년 5개월 사이에 환율이 17%가량 상승했다. 올 들어서만 1달러 당 원화 환율이 100원 이상 급등하면서 미국 유학생과 유학 비용을 대는 학부모들의 지출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서 대학을 다니는 강모 씨(25)는 “한 달에 방세만 1900~2000달러, 식비는 1000~1200달러가 든다”며 “환율이 몇십원만 올라도 매월 수십만원을 더 지출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내 가파른 물가 상승도 유학생들에게는 부담이다. 올들어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매월 최고치를 갱신하며 급상승하고 있다. 지난 3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8.5% 상승해 40년 만 최고 상승폭을 보였고, 지난달 CPI도 8.3% 상승률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4년 간 미국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학교 문제로 부인과 딸을 두고 온 대기업 차장 전 모씨(44)는 ”주재원 시절보다 줄어든 국내 월급으로 매달 송금을 하다보니 생활비가 부족해 마이너스 통장까지 쓰게 됐다“며 한숨을 지었다.

올 가을 미국 대학원의 컴퓨터 공학 박사 과정 입학을 앞둔 김모 씨(25)는 “장학금을 받을 예정이지만 물가가 오른다고 생활비를 올려주진 않는다”며 “초기 정착비를 한국에서 마련해가야 하는 입장에서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환율 때문에 해외직구를 포기하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배송대행 수수료와 택배비, 카드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국내 판매 가격과 해외직구 가격이 비슷해진 물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쇼핑몰에서 인기가 높았던 79.95달러짜리 어린이용 ‘K2인라인스케이트’는 환율이 1100원 가량이었던 작년초 원화 환산 가격이 8만8000원 정도였지만 최근 환율이 올라 약 10만2000원이 됐다. 한 해외직구 인터넷 카페 이용자는 “직구대행·배송대행지 수수료와 택배비를 합쳐 K2스케이트를 사는데 15만원 가까이 들었는데 국내 쇼핑몰 가격 16만원과 별 차이가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미국 유명 스포츠웨어 브랜드 ‘컨버스’의 일부 운동화 제품은 국내 쇼핑몰 가격을 뛰어넘기도 했다. 해외 패션 온라인 쇼핑몰 ‘DSW’에서 ‘척테일러 올스타 스니커즈’는 67.94달러(관세청 고시환율 기준 약 8만6800원) 수준에서 팔리는데, 배송비까지 고려하면 국내 쇼핑몰 거래가격인 8만5500원 보다 만원 이상 높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향수 ‘소바쥬 오 드 뚜왈렛’도 아마존에서 60ml 제품 기준 105달러(약 10만3400원)에 판매되는데, 국내 공식 정가는 10만6000원으로 배송비를 고려하면 국내가 더 싸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자녀 옷과 신발 등을 사는 김 모씨(40)는 ”옷 값은 환율을 감안해도 여전히 미국이 싼 경우도 있지만 배송이 오래걸리고 교환 반품도 어려운 것을 감수할 정도로 매력적이진 않아 최근엔 직구를 잘 안한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세는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될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지속해 미 중앙은행(Fed)이 당분간 긴축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이 통화 완화 정책을 추진하는 점도 달러 강세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세영 기자 seyeong202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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