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일(한국시간).
지중해 서부 스페인령 발레아레스제도의 팔마 데 마요르카 리조트 특설코트. 윔블던을 4연패 하며 잔디코트에서 48연승을 기록하던 ‘잔디 코트의 마법사(wizard)’ 로저 페더러(당시 세계랭킹 1위)가 흰색 테니스복을 입고 경기장 우측 연두색 잔디를 밟았다.
맞은편 황토색 클레이(점토)코트에는 ‘클레이코트의 지배자(supremo)’ 라파엘 나달(세계랭킹 2위)이 들어섰다. 나달은 클레이코트에서 열리는 프랑스오픈을 2005·2006년 연속으로 석권하며 클레이코트 72연승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훗날 ‘코트 바닥 전투(the battle of surfaces)’로 이름 붙여진 명경기의 서막이 올랐다.
두 선수는 코트를 옮겨가며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세트 스코어 1-1이던 3세트에서 페더러는 4-1로 승리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클레이를 밟은 나달이 장기를 살렸다. 나달의 강력한 왼손 포핸드 공격이 이어졌다. 잔디에 튕긴 공은 회전하며 빠르게 페더러 옆을 스쳐갔다. 최종 승자는 4점을 순식간에 따내 역전하며 마지막 3세트를 챙긴 나달. 로이터통신은 “코트 바닥 전투는 1973년 남녀 첫 성 대결(빌리 진 킹과 보비 릭)과 함께 테니스 역사의 진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남반구의 한여름인 매년 1월 중순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호주오픈은 메이저대회의 1학기 개학식으로 불린다. 1905년 시작해 다른 그랜드슬램에 비해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지만 해당연도의 테니스계 판도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유럽과 미국 등 한겨울 북반구에서 온 선수들은 폭염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권하는 경우도 생긴다. 호주오픈은 파란색의 아크릴 계열 신소재인 ‘플렉시쿠션’으로 덮인 하드코트에서 열린다. 티켓은 개막전 온라인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2022년 1월 남자 단식 결승전 기준 470~930달러(56만~110만원) 수준이다.
매년 5월 말 열리는 프랑스오픈의 공식 명칭은 ‘롤랑 가로스’다. 비행기로 지중해를 건넌 최초의 비행사이자 프랑스의 제1차 세계대전 전쟁 영웅 이름에서 따왔다. 1891년부터 파리에서 시작했다. 벽돌을 잘게 부숴 만든 ‘앙투카’ 재질의 클레이코트가 특징이다. 일반 클레이코트보다 공이 더 크게 튄다.
소나기가 잦은 날씨 탓에 유럽에는 배수가 잘되는 클레이코트가 많다. 이에 프랑스오픈에서는 유럽 선수들이 강세를 보인다. 특히 스페인 출신인 나달은 프랑스오픈에서만 2005년부터 2020년 사이 13번이나 우승했다. 티켓 가격은 남자 단식 결승전 기준 1인당 22만원으로 저렴한 편이지만 선착순으로 온라인 티켓팅의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윔블던은 복장 규정으로도 유명하다. 경기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는 반드시 복장을 흰색으로 통일해야 한다. 상·하의 경기복은 물론 양말, 운동화부터 여성용 속바지와 스포츠브라 등도 포함된다. 2013년 대회에서 페더러는 밑창이 주황색인 테니스화를 신었다는 이유로 신발을 바꿔 신기도 했다. 2017년 대회에서는 비너스 윌리엄스가 밝은 분홍색 스포츠브라를 지적받고 갈아입었다. 티켓 구매는 대회 1년 전인 전년도 8~10월 사전 추첨을 통해 이뤄진다. 경기 날짜와 시간을 정할 수는 없다. 가격은 44~240파운드(7만~37만원) 수준이다.
영국에선 “윔블던에 딸기 먹으러 간다”는 말도 있다. 19개 코트 사이에 자리잡은 식당과 매점에선 3000가지 종류의 음식을 220명의 셰프가 만든다. 그중 윔블던의 상징이 된 ‘스트로베리 크림’은 10개 정도의 딸기에 크림과 설탕을 넣어 약 3파운드에 판다. 경기 기간에 약 30t의 딸기가 팔려나간다.
매년 8월 말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US오픈은 해당연도의 마지막 메이저대회다. 메인 코트인 아서 애시 스타디움은 2만3771명의 관람객을 수용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테니스 전용 경기장이다. 바닥은 호주오픈과 비슷한 재질로 된 하드코트다. 1881년부터 시작됐다. 롤랑 가로스나 윔블던과 같은 다른 메이저대회와 달리 조명시설이 잘돼 있어 야간 경기도 치러진다. 티켓 구매는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가장 저렴한 티켓은 19달러(약 2만4000원)에 불과하다.
김진원/김보라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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