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보국' 외친 구자학 아워홈 회장 별세…"기업은 돈벌어 나라·국민 잘 살게 해야 한다"

입력 2022-05-12 17:46   수정 2022-05-13 20:59

“나라가 죽고 사는 갈림길에 있다. 기업은 돈을 벌어 나라를, 국민을 부강하게 해야 한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외치며 반세기 넘게 산업 현장을 지킨 ‘대한민국 산업화 1세대’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12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그는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둘째 사위였다. 삼성과 LG를 두루 오가며 경영 족적을 남겼다. 2000년 LG유통의 작은 사업부에 불과하던 아워홈(당시 FS사업부)을 독립시켜 연매출 1조7000억원의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대한민국 산업화 1세대
구 회장은 1930년 7월 15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6·25전쟁에 참전했다.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호국영웅기장 등 여러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의 차녀인 이숙희 씨와 1957년 결혼하면서 LG·삼성 두 가문의 결합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후 구 회장은 10여 년간 제일제당 이사와 호텔신라 사장 등을 지내며 삼성그룹에서 일했다. 이병철 회장이 구 회장의 경영 수업을 직접 챙긴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1969년 삼성이 전자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LG(금성)와 경쟁 구도가 형성되자 구 회장은 LG그룹으로 돌아갔다. 구 회장은 이후 럭키(현 LG화학) 대표이사, 금성사(LG전자) 사장, 금성일렉트론(SK하이닉스) 회장, LG건설(GS건설) 회장 등을 역임하며 LG에서 경영인으로 활약했다.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되려면 기술력만이 답”이라고 여겼다. 직원들에게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가 걸어온 길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배경이기도 하다.

구 회장은 1981년 럭키에서 ‘국민 치약’으로 불리는 페리오 치약을 개발했다. 1985년에는 화장품 ‘드봉’을 처음으로 수출했다.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종합식품기업 육성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 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했다고 알려졌다. “국민이 건강해야 기업도, 나라도 건강하다”는 생각에 젊은 시절부터 식품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 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였던 구 회장이 2000년 LG유통에서 가장 작았던 FS사업부를 들고 독립했을 때 재계에선 의아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구 회장은 아워홈을 국내를 대표하는 단체급식·식자재 유통 기업 중 하나로 키워냈다. 아워홈은 2000년 매출 2125억원에서 2021년 1조7408억원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숙희 씨와 아들 구본성 전 부회장, 딸 구미현, 구명진 씨,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 등이 있다. 구 회장은 당초 막내딸 구지은 부회장을 경영에 참여시켰다. 하지만 2016년 장남인 구본성 당시 부회장이 동생을 밀어내고 대표이사 자리에 올라 형제간 분쟁이 불거졌다. 지난해에는 세 자매가 손잡고 오빠를 해임하면서 구지은 부회장이 경영권을 잡았다. 구 회장은 결국 자식들의 화해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조문에는 범삼성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았다. 오후 2시30분께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조문했고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빈소를 찾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오후 4시 40분께 조문을 왔다.

하수정/한경제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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