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어설픈 산업은행 민영화의 추억

입력 2022-05-12 17:26   수정 2022-05-13 00:24

4년 전 이맘때 얘기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에 한국GM 회생을 위한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사실이 본지 보도를 통해 터져 나왔다. 석 달간 시장을 뒤흔든 ‘GM 사태’의 시작이었다. GM은 곧바로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한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엄포까지 놨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표’ 계산에 분주하던 정치권은 산은을 몰아세웠다. 머리를 싸매던 산은은 결국 8000억원가량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비용(자금 지원) 대비 사회적 편익(일자리 유지 등)이 크다’는 이유를 댔다. 뼈를 깎는 기업 구조조정에 등장한 ‘가성비론(論)’이다. 정치권 눈치를 보며 국내 산업계와 자본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해온 산은의 ‘고단한 신세’를 보여준 사례 중 하나다.
재등장한 산은 민영화론
올 들어 산은이 다시 정치권 눈치를 살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산은의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숨죽인 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에는 산은의 부산 이전과 맞물려 정치권을 중심으로 ‘산은 무용론’이나 ‘역할 조정론’까지 거론되는 모양새다. 산은이 쌍용자동차, KDB생명 매각 등에 잇달아 실패하면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 탓이다.

한발 더 나아가 산은의 ‘발전적 해체’나 ‘민영화’ 주장까지 등장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산은 기능을 재편하거나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그런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10여 년 전 어설프게 추진됐던 산은 민영화에 대한 추억이 떠올라서다. 산은 민영화 논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처음으로 튀어나왔다. 당시 구상은 거창했다. 산은을 글로벌 상업투자은행으로 키워 국내 자본시장 육성 정책을 선도하겠다는 야심 찬 전략을 내세웠다. 산은을 쪼개 정책금융공사를 따로 만들어 금융사와 기업 지원을 맡기겠다는 목표였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산은의 기업공개(IPO)는 하염없이 미뤄졌다. 소매금융 기능이 워낙 취약한 데다 대내외 경제 여건도 좋지 않아 자금 조달이 어려웠다. 정책금융공사는 수익 구조가 취약해 매년 수천억원씩 적자를 냈다. 그러던 와중에 부실 기업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선수’들과 노하우가 쌓여 있는 산은은 민영화 준비에 묶여 손을 쓰지 못했다.
'표' 대신 시장 편익 따져봐야
보다 못한 박근혜 정부는 결단을 내렸다. 출범 첫해인 2013년 두 기관을 다시 통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거대한 정책 실패의 대가는 혹독했다. 산은과 정책금융공사를 분리(2009년)했다가 5년 만에 다시 통합하는 데 들어간 비용만 줄잡아 2500억원으로 추산된다. 국내 기업들과 자본시장이 정책 실패로 겪은 고통과 혼란은 돈으로 따지기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였던 정치인이나 공무원 중 책임진 이는 아무도 없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국민은 산은의 부산 이전이나 민영화에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결과에 따라 기업과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크다. 불확실성의 시대엔 더 그렇다. 언제 구조조정의 시대에 내몰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산은에 손을 대기 전에 깊은 고민과 토론을 통해 정책의 가성비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산은의 부산 이전이나 민영화를 통해 얻을 ‘표’를 먼저 계산하면 안 된다. 기업들과 금융회사, 자본시장 그리고 국민의 편익을 따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또 다른 삽질’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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