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단지로 국내 최대 규모(9510가구)인 헬리오시티는 2018년 12월 입주 당시 전용면적 84㎡ 전셋값이 6억원대에 불과했다. 워낙 대단지라 주변 시세보다 전셋값이 낮았다. 입주 후 첫 재계약 시점을 앞둔 2020년 8월 임대차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되자 유난히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컸던 배경이다. 그 여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헬리오시티 전셋값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가격(평균 8억6400만원), 신규 가격(11억6900만원), 계약은 갱신했지만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가격(9억6600만원)으로 삼중화됐다.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8월부터 내년 7월까지 1년간 계약갱신청구권을 소진한 전세 물량 7만1000가구가 시장에 나온다. 서울 전체 거래량의 15%에 이른다. 한국경제신문이 작년 6월부터 현재까지 국토교통부에 신고한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84㎡ 전셋값은 신규 전세 계약가(평균 17억1900만원), 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기존 일반계약(15억5800만원), 청구권을 사용한 전셋값(13억8000만원)으로 삼중화됐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이 단지는 신규 계약 시 평균 9억5000만원, 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으면 평균 7억100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청구권을 쓰면 평균 6억3200만원에 재계약을 맺었다. 청구권을 소진한 세입자는 3억원가량의 자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비강남 지역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는 신규 계약(10억4600만원)과 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재계약(9억원), 5%만 인상한 계약(7억9300만원)으로 가격이 형성됐다.
공급 가뭄까지 겹쳐 최근 전세 최고가 계약이 잇따르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 반포센트럴자이 전용 114㎡ 전세는 지난 5일 보증금 21억원에 계약이 체결됐다. 역대 최고가로, 직전 전셋값(19억원)보다 2억원이나 올랐다. 동작구 흑석동 ‘흑석한강센트레빌2차’는 3월 말 전용 146㎡ 전세가 역대 최고가인 16억원에 계약됐다. 동작구 G공인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이달 들어 전셋값을 5000만원씩 올렸다”며 “전세 물량은 나오는 대로 소진돼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출 규제 정상화로 전셋값 인상분을 대출받기는 수월해졌지만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현재 3~4%대인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이뤄지면 연말 5%대까지 오를 전망이다. 1억원당 월 40만원, 3억원이면 월 120만원의 이자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윤수민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9억원 초과 1주택자는 여전히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어 본인 집 전셋값을 올려 전셋값 인상분을 충당해야 하는 만큼 연쇄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셋값과 매매가 차이가 6억원 이상 벌어진 것도 자극 요인으로 꼽힌다. 집값 급등으로 매매로 갈아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7722만원으로, 전셋값 평균 6억7570만원과 차이가 6억원에 달한다. 5년 전 전세·매매 차이는 1억9000만원 수준이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투자 수요가 포함된 매매와 달리 전세 시장은 철저히 실수요로 움직이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에 민감한데 수급 상황이 악화일로”라고 우려했다.
심은지/박종필/이혜인 기자 summi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