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쇼크’로 전체 암호화폐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비트코인은 전일 대비 8.0% 하락하면서 지난해 7월 이후 처음 3만달러 선이 깨졌다. 이더리움(-17.6%), 리플(-24.0%), 에이다(-26.0%), 솔라나(-29.0%), 도지코인(-23.0%) 등도 급락했다.
루나는 지난달만 해도 15달러에서 119달러로 9배 가까이 오르며 역대 최고가 행진을 이어왔다. 올 들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30% 이상 떨어지는 동안 고공행진을 이어오면서 세계 코인 시총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글로벌 암호화폐 업계는 루나 개발자인 권 대표에게 주목했다. 1991년생인 권 대표는 대원외국어고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엔지니어로 일하다 2018년 신현성 티몬 창업자와 함께 테라폼랩스를 창업하며 루나와 스테이블코인 ‘테라’를 내놨다.
창업 당시에도 암호화폐업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두나무의 자회사인 두나무앤파트너스가 초기 자금을 댔고, 세계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바이낸스도 시드 투자에 참여했다. 루나는 올 들어 지속된 코인 하락에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기존 금융권을 부정하는 코인으로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권 대표는 국내 언론과 접촉을 끊고 트위터를 통해서만 소통하면서 ‘한국판 머스크’로 불렸다. 최근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증권법 위반 혐의로 소환장을 발부하자 거꾸로 SEC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권 대표는 디파이(탈중앙 금융)인 ‘앵커 프로토콜’을 통해 루나의 가격을 떠받쳤다. 앵커 프로토콜은 투자자가 루나 등 암호화폐를 맡기면 연 20%의 이자를 지급하는 디파이 서비스다. 투자자는 루나를 담보로 맡기고 시가의 60%까지 테라를 대출받아 이를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하고 연 20%의 이자를 받아 수익을 낼 수 있다. 이 앵커 프로토콜에 맡겨진 테라가 전체 테라 발행 물량의 70%를 넘어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최근 암호화폐 투자 심리가 악화하자 문제가 생겼다. 지난 10일 테라의 가치가 일시적으로 1달러보다 떨어지자 루나가 공급됐지만, 예전과 달리 루나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루나의 가치가 더 빠르게 떨어지자 루나를 찍어내서는 테라의 가치도 지탱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이를 지켜본 테라 보유자들도 테라를 투매하면서 테라의 가치도 덩달아 추락했다. 이른바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이다.
루나가 폭락하면서 루나 시총이 테라 시총보다 줄어든 것도 불안 심리에 영향을 줬다. 루나만으로는 테라 투자자들의 현금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앵커프로토콜이 여기에 기름을 얹었다. 테라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앵커프로토콜에 루나를 맡긴 투자자들이 루나를 서둘러 빼내 팔았고, 루나의 가치 폭락에 영향을 줬다. 테라는 앵커프로토콜을 통해 60%의 레버리지가 일어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큰 타격을 입었다. 테라와 루나 투자자들이 함께 패닉에 빠지면서 코인업계의 ‘뱅크런’이 본격화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언제든 테라처럼 ‘뱅크런’을 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셰러드 브라운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은 “규제되지 않는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다”며 “만약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전체 금융 시스템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