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영국 통계청(ONS)은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 3월 0.1% 감소했고, 1분기 전체로는 0.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1분기 성장률은 영국 중앙은행(BOE)의 추정치였던 0.9%를 밑도는 결과다. 로이터통신이 전문가들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조사 평균값(1%)보다 낮게 나왔다.
대런 모건 통계청 경제통계국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생활비가 치솟자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며 “유가가 급등하자 국민들이 운전 횟수를 줄이고 필수품 구매에만 돈을 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경제가 더 나빠질 거라는 비관론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 3월 물가 상승률이 7%에서 연말에는 10%까지 치솟을 거라고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영국이 내년에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성장률과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보일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폴 데일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생활비 위기가 제대로 덮치지 않았는데도 경제 활력이 예상보다 떨어졌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예견했다.
저성장이 지속되자 영국 국민들의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소비심리가 달라졌다. ‘영국 경제 조사 2030(The economy 2030 inquiry)’에서 11일 발간한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고소득자들은 이직을 주저하는 경향이 거세졌고, 저소득층일수록 이직 동기가 커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경제 조사 2030은 2021년 영국 학계와 씽크탱크가 협업해 출범한 프로젝트다. 런던정치경제대학과 경제사회연구위원회, 씽크탱크인 리솔루션 재단 등 저명한 기관이 손을 맞잡았다. 영국 경제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 10년을 대비하기 위한 연구를 2023년까지 시행해 최종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주제별로 중간 보고서도 발행한다. 이번 연구에선 직업과 소득, 계층별로 구분해서 참여자를 모은 뒤 한 달 동안 집단심층 면접조사(FGI)를 시행했다.
고정관념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직무능력이 뛰어나 연봉이 높을수록 한 회사에 머물지 않고 이직이 빈번할 거란 통념이 팽배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고소득자들은 지금처럼 연봉을 높게 쳐주는 회사를 찾기 어려울 거란 두려워했다. 연봉에 비해 빈약한 실업수당과 복지체계도 이직률을 낮추는 요인이 됐다. 저성장과 빈약한 복지 시스템이 이직 동기를 낮춘 셈이다.
반대로 저소득층에선 이직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른 노동자가 대체하기 쉬운 업무를 맡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이직 동기가 상대적으로 컸다. 애초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본인도 쉽게 재취업할 거란 믿음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대학 학위, 자격증 등 더 나은 직업을 얻으려는 동기도 적은 편이었다. 지갑 형편이 여의찮은 데다 국가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연구를 주도한 칼 핸스콤브 리솔루션재단 선임연구원은 “저소득층에겐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고 고소득층을 위한 복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노동시장을 예전보다 더 유연하게 바꿔야 경제 원동력을 발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서 생활비가 치솟는 상황에 대해선 소득을 가리지 않고 불안이 증폭됐다. 저소득층은 특히 가격 변동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격이 수시로 바뀌는 게 상승하는 것보다 불안하다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예상했던 지출 예산을 계속 수정하는 데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탓이다.
핸스콤브 연구원은 “영국 경제는 지금 무너지고 있다. 성장률은 낮아졌고 불평등은 심화했다”며 “편견을 깨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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