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핀란드는 친소 중립정책을 취해왔다. 20세기 두 번에 걸쳐 소련과 전쟁을 치른 핀란드는 1948년 소련과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고 중립정책을 채택했다. 당시 파시키비 대통령은 소련의 ‘정당한’ 안보이익을 인정하면서 동서 진영 간 중립을 취해야 핀란드의 평화와 정치적 독립이 유지될 것으로 판단했다. 정책은 후임인 케코넨 대통령에 의해 계승됐다. 중립정책이 ‘파시키비-케코넨’ 라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핀란드화(Finlandization)’로도 지칭되는데, 강대국 사이에서 소국이 자치와 주권을 유지하나 대외정책에서는 강대국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의미한다. 약소국의 굴욕적, 종속적 외교정책으로 폄하하는 의견도 있으나 잘못된 해석이다. 오히려 생존을 위한 현실적, 실용적 정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적절한 생존전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성공 사례로 핀란드를 꼽았다.
스웨덴도 군사적 중립정책을 안보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핀란드와의 차이점으로는 1814년 이후 ‘평시 비동맹·전시 중립’ 정책을 채택한 점과 강력한 방위력을 유지해온 점을 들 수 있다.
외교안보 정책은 유기체와 같아 대외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 진화한다. 탈냉전시대인 1992년 핀란드는 러시아와의 원조조약을 폐기했다. 양국은 유럽연합에도 가입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양국은 나토의 ‘평화를 위한 동반자 계획(PfP)’에 가입하고 합동훈련에 참가하는 등 협력을 강화했다. 결정적 쐐기를 박은 것은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제국의 향수에 젖어 ‘신(新)얄타 체제’를 수립하려는 강대국의 힘의 정치 앞에 중립정책은 존립 기반을 상실했다.
강대국의 위협 앞에 양국은 중립정책을, 한국은 한·미동맹을 선택했다. 안정적 대외환경 속에서 양국은 선진복지국가로, 한국은 민주적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도박으로 당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과소평가해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소극적이던 미국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한때 한국의 미래 전략으로 양국의 중립 모델이 논의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나토 가입 결정은 중립정책이 비현실적 대안임을 실증한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에도 안정자로서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다.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국제관계에도 적용된다. 양국의 나토 가입 후 러시아와 나토 간 국경선은 1233㎞에서 2573㎞로 급증한다. 러시아는 북방함대를 강화하고 발트해에 핵을 배치하는 등 방어 수단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북한의 핵 위협, 지정학의 귀환, 미·중 및 미·러 갈등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한·미가 포괄적 전략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시대적 당위다. 동맹의 기능과 역할은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발생 가능한 반작용에 대비해 시기와 범위는 섬세하고 신중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역내 신뢰 구축을 위해 다자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양국이 중립정책을 버리고 나토에 가입한 데는 서구적 정체성과 함께 정치적, 사회적 합의가 기여했다. 대화와 타협에 의한 합의제 민주주의 전통이 균열 없는 정책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대변환의 시기에 한국 외교가 효율성, 신뢰성, 연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국익에 입각한 초당적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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