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휘청거리는 일본 경제가 주는 교훈

입력 2022-05-15 17:05   수정 2022-05-16 00:11

엔저(低) 공포가 일본 열도를 강타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나쁜 엔저’ 현상으로 물가 인상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금리 인상도 국채 이자 부담 급증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엔화 불패의 신화가 흔들리는 배경에는 일본 경제의 활력 저하가 자리 잡고 있다.

엔저는 아베노믹스가 남긴 부정적 유산이다. ‘엔고의 저주’로 고전하던 기업의 수출 경쟁력 회복을 견인했다. 상장 기업의 수익성이 호전됐다. 하지만 기대했던 임금 상승과 소비 증대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경기 훈풍에 취해 구조개혁의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철강·자동차 같은 중후장대형 산업과 소재·부품·장비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실기했고 4차 산업혁명 대응도 한발 늦었다.

일본주식회사를 창출한 1등 공신인 제조업의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제조업 경쟁력 지수에서 일본의 순위는 1990년 2위에서 2012년 3위, 2018년 5위로 떨어졌다. 도요타자동차, 소니는 특유의 저력을 발휘했지만 도시바, 파나소닉 등 주력 제조업체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양상이다. 자동차, 철강, 조선의 3각 편대가 보여준 가공할 산업 경쟁력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됐다.

반도체 몰락은 뼈아픈 대목이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선제적 투자에 힘입어 D램 부문의 시장 지배를 공고히 했다. 일본 정부는 세계 3위 D램 반도체 회사 엘피다의 경영 위기를 방치해 미국 마이크론사에 매각되는 전략적 실책을 저질렀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체제로 재편된 배경이다. 대만은 소중한 전략적 자산인 TSMC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미국과 신밀월 시대를 여는 쾌거를 이뤘다.

서비스산업의 낮은 생산성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과의 생산성 차이는 대부분 여기서 기인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부가가치 격차도 서비스 부문에서 크게 나타난다. 미국은 250인 이상 중소기업이 절반을 차지하는 반면 일본은 12% 수준에 그치고 있다. IMD(국제경영개발원) 평가에서 해외 경험, 디지털 전환, 글로벌 마인드 수준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높은 비정규직 비율은 왜곡된 고용시장의 슬픈 자화상이다. 비정규직 비율이 1989년 19.1%에서 2021년 36.7%로 상승했다. 1980년대 버블 붕괴 후 고용 행태가 변하고 전후 종신고용 체계가 무너진 산물이다. 기업의 수익성 유지와 구조조정 우회 목적으로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고학력 워킹푸어와 새로운 주변부 계층인 언더클래스의 등장은 일본 사회에 보내는 적신호다.

대표적인 재정 불량 국가가 됐다. 국가채무비율이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다. 국가채무비율이 1990년 60%에서 2007년 154.3%, 2021년 256%로 급증했다. 이자 지출을 제외한 기초재정수지가 만년 적자 상태다. 매년 30조엔 이상 국채를 발행한다. 지난 30년간 늘어난 대부분 예산이 사회보장 부문으로 흘러갔다. 재정 포퓰리즘의 산물이고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회피한 국가 정책의 실패다.

인구절벽이 심각한 수준이다. 2020년 합계출산율은 1.33명으로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 경쟁국보다 낮다. 총인구 감소도 계속된다. 매년 중소도시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1인 가구 비율, 결혼 건수, 결혼 연령도 악화하는 추세다. 고령 인구 비율이 올해 29%를 웃돌 전망이다. 10년 후에는 인구 절반이 50세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지방 소멸이 지나치게 가파르다. 도쿄, 오사카 권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인구 감소가 뚜렷하다. 신생아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운 지방이 속출하고 있다. ‘장수 국가’로 찬사를 받지만 정신병원의 병상 수, 농약 사용량 같은 사회지표는 바닥 수준이다. 1억 인구 사수는 일본의 생명줄이지만 2050년 9000만 명 선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건설업과 관광업만 잘되는 나라. 꿈이 쪼그라들고 있는 나라. 일본에 대한 자조적 표현이다. 휘청거리는 일본 경제는 구조조정, 산업 체질 개선, 규제 혁파를 회피하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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