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가 맡긴 투자자 자금…케이뱅크, 대출 재원으로 썼다

입력 2022-05-15 17:18   수정 2022-05-16 00:58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 투자자들이 맡겨놓은 투자금을 영업 재원으로 써온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국산 암호화폐 ‘루나’ 사태로 시장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자금 인출 수요가 몰릴 경우에 대비해 투자자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작년 말 기준 5조5000억원에 달하는 업비트 투자자들의 현금을 별도로 보관하는 대신 대출 등 영업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가 케이뱅크 개인 계좌에 돈을 맡겼다가 본인 인증을 거쳐 업비트에 입금하면 투자금은 법인 계좌로 이체된다. 업비트 이용자가 업비트에 맡겨뒀던 현금을 인출하려고 하면 케이뱅크는 즉각 자금을 뺄 수 있도록 법인 계좌에 현금으로 쌓아둬야 한다. 그런데 투자금을 대출 자금으로 활용하면 뱅크런이 발생했을 때 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다. 케이뱅크 측은 “업비트 예치금은 국공채나 환매조건부채권(RP) 등 고유동성 자산 위주로 관리하고 있다”면서도 “일부 자금이 대출로 나가 있는 건 맞다”고 했다.

지난해 말 기준 케이뱅크의 예금 잔액은 11조3175억원으로 업비트 예치금이 절반에 가깝다. 업계에선 업비트 예치금의 10%가량이 대출로 나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빗썸, 코인원의 법인 계좌를 관리하는 농협은행과 코빗의 계좌를 관리하는 신한은행은 별도 계정을 만들어 투자금을 보관하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 자금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 법인 계좌인 탓에 업비트 예치금 5조5000억원 가운데 5000만원에 대해서만 예금자 보호가 적용된다. 윤 의원은 “해당 거래소와 제휴 은행은 고객 예치금의 별도 보관을 위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인 계좌 발급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은행들이 투자자 자금은 보호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은행들은 거래소로부터 법인 계좌 발급에 따른 수수료로 매년 수백억원의 이익을 보고 있다. 케이뱅크는 업비트로부터 계좌 이용 수수료로 작년에만 292억4500만원을 챙겼다. 케이뱅크 이자이익(1980억원)의 14%로 당기순이익(225억원)보다도 많다. 농협은행(102억4800만원), 신한은행(8억4700만원)도 빗썸과 코인원, 코빗 등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았다.

금융당국은 루나 사태를 계기로 암호화폐 투자자 손실과 자금 유출입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섰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 12일 암호화폐거래소로부터 루나 보유자와 루나 거래 규모 등에 대해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루나 사태를 유발한 테라재단에 자료를 요구하거나 감독할 권한은 없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 필요성이 커진 만큼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 이번 사태가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내용을 담은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마련할 계획이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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