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오의약품 공장 인수전…9회말 2아웃 역전홈런 친 롯데 [차준호의 딜 막전막후]

입력 2022-05-17 17:13   수정 2022-05-18 16:20

“탐나는 매물인데 우리한테도 기회가 올까?”

롯데그룹이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미국 뉴욕 동부 시러큐스 지역에 있는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매각한다는 정보를 확인한 것은 지난해 10월께다. 신성장2팀장으로 영입돼 롯데그룹 바이오 사업 진출 업무를 맡은 이원직 롯데지주 상무는 고민에 빠졌다. 이 상무는 BMS와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근무하다가 롯데로 옮긴 바이오업계의 ‘인사이더’였다. 개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확인한 결과 BMS 공장이 매물로 나온 게 확실했다. 하지만 인수전에 참여하려고 여러 번 문의해도 BMS는 묵묵부답이었다. 이 상무는 조바심이 났다. 롯데가 바이오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첫 도약대로 이 공장만 한 자산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이오사업 진정성 전달 총력
곰곰 생각해 보니 BMS가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BMS는 연구개발(R&D)에 집중하기 위해 생산설비 매각에 나섰지만 공장을 인수한 뒤에도 자사 제품을 안정적으로 제조해줄 회사를 찾아야 했다. 롯데그룹은 그들에게 아시아에 있는 생소한 기업이었다. 그런데다 바이오 사업 경험도 없었다. 수년 후에 사업에서 철수하면 BMS까지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롯데그룹은 바이오 사업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어필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우선 그룹의 주요 사업과 역량을 알리는 데 초점을 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을 위해 수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극찬을 받은 롯데케미칼의 미국 루이지애나 에탄크래커(ECC) 설비 투자 등 미국 내 투자 현황도 전달했다.

천신만고 끝에 인수전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됐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현지에서도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매물은 수년에 한 번 시장에 등장하는 귀한 기회였기 때문에 바이오 기업, 사모펀드(PEF) 운용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우선협상자 탈락 시련도
입찰이 시작되자 경쟁은 예상보다 더 치열했다. 시가총액만 200조원이 넘는 BMS 입장에서 2000억원 규모의 공장 매각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큰 주안점이 아니었다. 롯데에는 금액 외에 예상치 못한 다양한 변수가 등장했다.

우선 1943년 설립된 이 공장의 긴 역사가 변수였다. 해당 공장은 설립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페니실린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며 BMS를 글로벌 제약그룹으로 키운 모태이기도 했다. 현재는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는 시설로 바뀌었지만 그간 시러큐스 지역사회에서도 대를 이어 주민들의 일자리를 책임져온 공장이었다. BMS 본사는 매각에 대한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현지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임직원에게 맡기는 등 의사결정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다.

롯데는 시러큐스 지역사회에 회사를 알리고 주민들과 융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서울 잠실 롯데타워 전경을 담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공장 임직원과 지역 주민에게 그룹을 홍보했다. 신동빈 회장도 지난 4월 미국 출장 중 직접 시러큐스 지역을 방문해 BMS 임직원을 만났다.

석 달여간 혼신의 힘을 쏟았지만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현지 PEF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우선협상자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들어야 했다. 바이오 분야에 첫발을 들이는 롯데 입장에서는 BMS 측에 기존 물량을 당분간 유지해달라는 ‘확약’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역시 약점이었다. 그룹 관계자들은 좌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4월이면 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현지 PEF와 BMS 간 본계약 일정이 수차례 연기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PEF가 예정에 없던 공장 부지 실사를 BMS에 다시 요청하면서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첩보였다. 롯데 M&A 담당자들은 즉시 “우리는 바로 계약서에 서명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짜릿한 9회말 역전 홈런이 이렇게 미국에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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