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서양 격언처럼 최근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든 한국산 코인 루나·테라의 폭락 사태 역시 과정은 혁신적인 코인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선의와 블록체인이 그리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다.
이 코인을 발행한 테라폼랩스의 창업자 권도형 대표는 “테라는 (국경 없는 전자화폐로) e커머스를 넘어 송금·환전·대출·보험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금융 상품에 적용될 것”이라며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결제 서비스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올해 30세에 불과한 권 대표의 유토피아적 청사진에 투자자들은 열광했다. ‘루나틱(루나 코인 지지자)’이라는 맹목적인 팬덤까지 형성했다. 루나 시가총액은 지난달 50조원에 달해 전 세계 상장 코인 중 8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코인 유토피아의 실상은 허구였다. 테라 코인 한 개당 가치를 1달러에 고정하면서 미국 달러나 국채 등 안전자산이 아닌 자매 코인(루나)을 발행해 가치를 떠받친다는 설계부터 그랬다. 사실상 ‘코인 돌려막기’ 구조였다. 신기루로 쌓아 올린 ‘50조원 바벨탑’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탐욕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엔 투자자들의 눈물과 한숨만 남았다. 국내 피해자만 해도 28만 명이 넘는다.
루나 폭락 사태는 코인이란 미지의 자산을 기반으로 개발자의 오만한 기술지상주의와 투자자의 한탕주의가 빚은 합작품이다. 독일 출신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호모 사피엔스(사유하는 인간)에 대한 호모 파베르(작업하는 인간)의 승리’라는 표현을 통해 기술 진보 과정에서 인간이 기술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갈파했다. 그는 윤리가 과학기술 시대의 여러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현 상황을 ‘윤리적 진공 상태’라고 진단했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유전공학, 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기술혁명 시대에 탐욕의 기술이 몰고 올 결과는 재앙적이다. 미국 바이오벤처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가 벌인 실리콘밸리 사상 최대 사기극은 그 일단에 불과하다.
이번 루나 사태가 보여주듯 기술 발전에 윤리가 결여됐을 때 그릴 수 있는 미래는 디스토피아뿐이다. 그러나 공과대학 교실에선 어떤 가치를 기술에 담고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지는지를 가르치지 않는다. 기술 교육에 윤리와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적 소양의 육성이 반드시 동반돼야 하는 이유다. 기술 유토피아를 기대하는 우리 사회도 이면의 그림자가 몰고 올 디스토피아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첨단 기술이 파생하는 새로운 문제를 풀 수 있는 적절한 윤리적 기준과 보편적 공감이 필요하다. 그릇된 기술만능주의가 불러올 재앙을 막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집합적 책임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