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70만 섬나라가 던진 '親中 폭탄'…美 아태동맹 규합에 불붙이다

입력 2022-05-18 17:05   수정 2022-05-19 15:42

“러시아가 허리케인이라면 중국은 기후변화와 같다. 러시아는 빠르고 강력하게 움직이는 반면 중국은 장기적으로 천천히 구석구석 침투한다.”(롭 조이스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사이버안보전략 선임고문)

인구가 70만 명에 불과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솔로몬제도는 지난달 정식으로 중국과 안보 협정을 맺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이 솔로몬제도를 군사기지로 삼을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솔로몬제도를 자신들의 ‘뒷마당’으로 생각해온 서방의 충격은 컸다. 미국은 ‘제2의 솔로몬제도’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남태평양의 지정학적 요충지
솔로몬제도는 마냥 평화롭기만 했던 섬나라는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바꾼 전투가 바로 솔로몬제도의 가장 큰 섬인 과달카날에서 일어났다. 1942~1943년 벌어진 과달카날 전투에서 미국에 완전히 밀린 일본은 패색이 짙어졌다. 그만큼 솔로몬제도는 지정학적 요충지다.

솔로몬제도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청산하고 1978년 독립국이 됐다. 하지만 과달카날과 말레이타섬 주민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고 어느 쪽이 권력을 잡던 반정부 폭동이 일어났다. 솔로몬제도의 치안 유지를 위해 호주 등이 군을 파견하기도 했다. 오랜 내분으로 붕괴된 솔로몬제도의 경제 재건에는 이웃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솔로몬제도가 오랫동안 ‘서방의 뒷마당’으로 불리게 된 배경이다.

이 와중에 중국은 조용히 솔로몬제도의 한 유력 정치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었다. 2000년부터 수차례 총리를 역임했고 현재도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는 마나세 소가바레가 그 대상이다. 소가바레 총리는 2019년 대만과의 국교 단절을 선언하면서 친중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대신 그가 감수해야 했던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대만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말레이타섬은 강력 반발했고, 결국 독립까지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면서 지난해 말에는 소가바레 총리의 불신임 결의안이 의회에서 발의됐으나 부결됐다. 중국은 솔로몬제도에 수억달러 규모의 경제 원조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불안하게 지켜보던 미국은 솔로몬제도에 29년 만에 다시 대사관을 개설하겠다고 지난 2월 발표했다. 미국은 1993년까지 5년 동안 솔로몬제도에 대사관을 뒀지만 이후에는 영사관으로 전환했다.
○안보 협정 체결에 서방 발칵
중국과 솔로몬제도는 지난 3월 30일 안보 협정에 가서명했다. 안보 협정에는 중국이 필요할 경우 함정과 군 병력, 경찰 등을 솔로몬제도에 파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비공개 상태다. 중국 외교부는 양국이 안보 협정에 정식 서명했다고만 지난달 19일 발표했다.

서방은 경악했다. 남태평양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솔로몬제도가 중국 세력권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영향력이 태평양에서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온 미국은 특히 날카롭게 반응했다. 미국은 자국과 영국, 호주 사이 삼각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를 지난해 발족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솔로몬제도와 2000㎞ 떨어져 있는 호주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반중 노선을 걷고 있는 호주 입장에서는 솔로몬제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곧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된다.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은 중국과 솔로몬제도의 안보 협정 체결이 남태평양 지역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중국과 솔로몬제도는 안보 협정으로 솔로몬제도에 중국의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남태평양은 특정 국가들의 뒷마당이 아니다”며 오히려 서방의 패권주의가 문제라고 공격했다. 소가바레 총리는 3일 의회 연설에서 “솔로몬제도가 (미국 등 서방 국가들로부터) 관리 감독받아야 할 유치원생 취급을 당하고 있는데 매우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美, 아태지역 동맹 모은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동맹 규합에 더 힘을 쏟을 태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21일 방한하는 데 이어 22일 일본으로 건너가 24일까지 일정을 소화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일 중 출범이 유력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는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에 대응하는 경제 협력 채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 하반기에도 아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에 참석해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솔로몬제도 사태는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는 21일 총선을 앞둔 호주에서는 솔로몬제도와 중국의 밀착이 촉발한 안보 논란이 표심을 좌우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기밀 공유 동맹체인 파이브아이즈(Five Eyes)의 일원이지만, 그동안 중국 견제에 소극적이었던 뉴질랜드의 대중 노선에도 최근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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