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만의 케렌시아를 찾아서

입력 2022-05-18 17:46   수정 2022-05-19 00:02

정보의 풍요를 넘어 과잉의 시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SNS와 이메일, 문자메시지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가 다 들어가 있다는 유튜브, 이렇게 좋은 제품을 당장 안 사면 품절이라며 조바심 들게 하는 온라인쇼핑몰 등 타인과 기계가 제공하는 온갖 정보의 자극에 노출돼 있다.

독일 뇌과학자 에른스트 푀펠이 “정보화 시대에 인간의 생각 능력은 퇴보했다”고 한 연구 결과를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정보를 저장하고 재구성하고 꺼내는 능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실생활에서도 체감한다. 스마트폰 등 각종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다 보니 한 번 더 생각하고, 뒤집어 생각해 보는 ‘다소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을 건너뛴 결과일 것이다.

‘생각 건너뜀’의 대가는 사고력 저하에 그치지 않고 사고의 편향, 편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잠시라도 넋을 놓고 있으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세팅한 ‘만들어진 정보’에 접근하기 쉬운 세상이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는 수많은 댓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과 기계가 추천’한 각종 정보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타인과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내가 주도권을 갖고 내 의지에 따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극심할 때는 가능하면 ‘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판단의 근거를 백지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그간 판단력을 흐리게 했던 외부 자극을 떨쳐내고, 오롯이 내가 주체가 돼 판단하고 객관적인 논리 전개에 몰입하는 것이다. 일종의 ‘멍때리기’가 이런 것일까?

내가 애용하는 방법들이 있는데, 첫 단계는 ‘일단 멈춤’이다. 주위의 분주함으로부터 벗어나 생각과 행동을 잠시 멈춰 본다. 두 번째 단계는 ‘침묵하기’다. 침묵의 시간이 있어야 내면에 고요함이 찾아온다. 세 번째 단계는 ‘휴식하기’. 나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휴식하면서, 흔히 말하는 ‘케렌시아(querencia)’의 단계에 이르는 훈련을 한다.

스페인어 사전에는 케렌시아를 ‘애정, 애착, 귀소 본능’이라고 뜻풀이하고 있고, 투우에서 지친 소가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의미가 파생돼 우리말로는 ‘피난처’, ‘안식처’로 불리기도 한다.

나에게 케렌시아는 단순히 공간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하거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과정 등에서도 케렌시아를 찾을 수 있다. 케렌시아가 ‘좋아하다’, ‘원하다’는 의미의 ‘케레(querer)’에서 나왔다고 하니,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그 모두가 케렌시아다.

정보와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내면의 이성적 안내자를 통해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거치면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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