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억 걸작이 된 먼로…아메리칸 드림이 만든 20세기 비너스

입력 2022-05-19 16:33   수정 2023-04-29 18:39


지난 5월 9일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1928~1987)의 작품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1964)이 1억9500만달러(약 2500억원)에 낙찰됐다. 20세기 미술품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크리스티의 현대미술 책임자인 조안나 플럼은 이 작품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예술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로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같은 그림이 꼽힌다. 이 작품은 그 맥을 잇는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면서도 매우 워홀다운 방식으로 끝없이 재생산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플럼은 이 작품이 걸작인 이유로 ‘상징적 이미지’, ‘워홀 스타일’, ‘재생산’을 꼽았다. 이 세 가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작품을 감상하면서 차례로 짚어보자.

먼저 상징적 이미지는 시대성을 의미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예술가는 시대의 특성이나 가치를 유형화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시대정신을 작품에 표현하는 일이 곧 예술가의 사명이자 역할이라는 뜻이다.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에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초상화의 모델은 1950~1960년대 초반 섹스 심벌이자 대중문화의 대표적 아이콘인 미국 여배우 마릴린 먼로다. 먼로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대중이 환호하는 슈퍼스타 자리에 올랐다.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꿈(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자 미국적인 이상사회를 이룩하려는 대중적 욕망의 상징이다. 꿈의 공장인 할리우드 영화산업 시스템에 의해 대중매체의 산물인 된 먼로는 워홀의 예술관을 구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소재였다. 워홀은 미국 대중사회와 소비문화에서 영감을 받고 이를 미술 영역에 적극적으로 수용한 팝아트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소비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한 미국 대중문화의 미학과 생산 수단, 인기 연예인이나 명사들도 상품으로 대량 소비되는 현대자본주의 사회 현상을 먼로의 이미지에 담아냈다.

다음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워홀 특유의 스타일이다. 부와 명예를 추구한 워홀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예술가’의 전형을 제시했다. 그는 슈퍼스타와 같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최초의 예술가다.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한스 애빙에 따르면 예술가는 예술이 신성하다고 믿는다. 상업성이 예술의 품격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신념을 위해 금전적인 보상을 포기하고 경제적 고통을 감수한다. 하지만 워홀은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는 예술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해 엄청난 돈을 벌었고 세계적 명성도 얻었다.

순수예술은 상위예술이며 상업예술은 하위예술이라는 사회적 인식에서도 자유로웠다.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 (중략) 미래에는 백화점은 미술관, 미술관은 백화점이 될 것”이라는 어록을 남길 정도로 소비주의와 물질주의를 찬양했다. 그는 비즈니스 세계의 효율성과 예술세계의 창조성을 결합한 아트 마케팅 전략으로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통합한 업적을 남겼다.


끝으로 재생산 방식이다. 워홀은 광고 전단, 상표 등을 제작하는 상업용 인쇄 방식인 실크스크린 기법을 순수미술에 도입해 창작의 생산성을 높인 최초의 예술가다. 1962년 자신이 ‘팩토리’(공장)라고 불렀던 거대한 작업실을 마련하고, 화폭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대신 수십 명의 조수와 함께 사진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캔버스에 대량으로 복제하는 혁명적 창작 방식을 선보여 미술계에 큰 충격을 줬다.

그런데 한낱 인쇄물이 어떻게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워홀의 혁신적인 전략이 숨겨져 있다. 실크스크린 원본을 대량으로 제작하고, 여러 단계의 복잡한 작업과정을 거쳐 복제한 이미지 하나하나를 색깔을 다르게 칠하고, 색조 대비를 활용하는 등 회화성을 부여해 차별화했다. 상업미술에서 사용하는 대량생산한 이미지와 순수미술의 핵심인 유일성이 결합돼 대체불가능한 원본 가치를 갖게 된 것이다.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도 이런 독창적 창작 방식으로 탄생했다. 워홀은 1962년 먼로가 사망한 뒤 그가 출연한 1953년 영화 ‘나이아가라’ 홍보용 사진의 얼굴 부분을 잘라서 실크스크린 원형을 만들어 수백 가지의 다양한 먼로 초상화를 대량으로 제작해 생산성을 높였다. 현대미술의 개념을 바꾼 워홀의 혁신적 창작 방식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먼로의 초상화는 워홀이 화가로 국한된 영역을 아티스트 영역으로 확장시킨 최초의 예술가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미술사적 가치를 지녔기에 천문학적 가격에 거래된 것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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