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제주점의 기이한 상황은 제주시 소상공인들의 반대에서 비롯됐다. 유통 대기업이 제주에 상륙한다고 하자 중소벤처기업부는 잠재적 가해자(신세계)와 잠재적 피해자(제주시 소상공인) 간 사업 조정 권고 결정을 내렸다. 격론 끝에 신세계는 제주시 상인들이 판매 중인 나이키 등 372개 중복 브랜드를 팔지 않기로 하고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무엇이 공평하고 올발랐다고 말하는 것인가. 신세계 제주아울렛에서 판매 금지된 브랜드 상당수는 또 다른 소상공인에게 할당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주시 상인들의 반대로 그들은 기회마저 빼앗겼다. 사회적 편익이란 측면에선 마이너스 효과가 더 크다. 제주도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무한한 관광 자원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여행지로는 저평가돼 있다. 외국인들의 지갑을 열 만한 쇼핑 시설이 열악해서다.
참여연대 같은 진보를 표방하는 시민단체조차 공익과 충돌할 수 있는 공정 논리를 아무렇지 않게 주장하고 있다. 일명 ‘고양이 모래 PB 논란’이 한 예다. 쿠팡이 자사 자체브랜드(PB)인 ‘탐사’로 기존 상품보다 5~10% 저렴한 제품을 내놓자 참여연대는 플랫폼의 횡포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카카오 택시’ 논쟁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해법도 기계적 공정이라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 카카오 가맹 택시에 유리하게끔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는 기존 택시 회사들의 주장에 공정위는 ‘인공지능(AI) 배차’를 폐지하고, 승객에 가까운 순으로 콜을 잡을 수 있도록 ‘자동 배차’로 전환할 것을 명했다.
본래 공정은 정치·사회 영역에 합당한 가치 개념이다. 민주주의가 죄수와 현인에게 모두 한 표만의 투표 권리를 주는 것이 공정이고, ‘아빠 찬스’에 대한 합당한 비판의 말이 불공정이다. 경제에 공정이란 잣대를 억지로 끼워맞추는 것 자체가 어색하지만, 굳이 시장 경제의 공정을 묻는다면 경쟁이 곧 공정이다. 공정위는 총칙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성하고 소비자를 보호한다.’ 공정위를 비롯한 규제 기관의 관료들이 더 이상 왜곡된 공정 논리에 집착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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