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무대 위의 카리스마 마에스트로…현실에선 봇짐장수에 가깝다네"

입력 2022-05-20 17:47   수정 2022-05-20 23:37

‘무대 위에선 잔뜩 어깨에 힘을 주지만 실상은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도는 봇짐장수에 가깝다. 트렁크 가방엔 무대의상과 평상복은 물론 연필깎이까지 한가득이다. 공연이 끝나면 호텔 방에 들어와 외로움을 끌어안고 잠에 든다.’

단역 배우의 독백이 아니다. 카리스마의 상징, 지휘자의 고백이다. 《지휘의 발견: 마에스트로의 삶과 예술》은 뉴욕필, 프랑스 국립관현악단, 도쿄필하모닉 등을 이끌었던 존 마우체리의 50년 경험을 응축한 책이다. 마우체리는 세계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후학이자 동료로 18년간 함께 작업했다. 이후 15년간 예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노스캐롤라이나 예술대학 총장도 지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은 물론 번스타인 등 선배 지휘자들의 발자취를 모아 ‘지휘의 일대기’를 썼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클래식은 불친절한 설명이 많고 지시어도 복잡하다. 클래식 작곡가들이 그려 넣은 음표의 의미와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악기 소리를 이해하는 단 한 사람. 눈앞에 있는 음악가들과 등 뒤의 청중을 한곳으로 이끌어가는 이가 지휘자다. 지휘의 세계는 그래서 신비로운 마법과도 같다.

저자는 지휘를 마라톤에 비유한다. 책의 전반부에 지휘의 기술과 실전 팁을 자세히 설명하지만 결국 지휘란 테크닉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나이 든 지휘자의 청력이 떨어져도 오히려 소리를 주무르고 균형을 유지하는 통찰력은 더 날카로워지는 것을 근거로 든다.

마우체리는 직업으로서 지휘자의 삶, 생계 수단으로서 지휘라는 일에 대한 현실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세계 각지를 떠도는 지휘자의 호텔 방은 침실이자 사무실이자, 스튜디오이자 연구실로 쓰인다. 지휘자도 누군가의 부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경영진 등과의 비즈니스 관계를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관계’라는 주제에 가장 많은 페이지를 내줬다. 음악과의 관계, 음악가와의 관계, 청중과의 관계, 평론가와의 관계도 포함됐다.

클래식 악보 해석에 관한 논쟁도 다룬다. 저자는 모두가 동의하는 ‘올바른’ 바그너 사운드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파리의 베르디 사운드’와 ‘밀라노의 베르디 사운드’처럼 유럽 지역마다 한 작곡가의 곡이 다르게 해석되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다. 저자는 “지휘자들은 역사적 음반에서 여러 선택지를 발견할 뿐, 이를 불변의 모범 답안으로 여기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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