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신료 문제' 창의적 발상이 필요하다

입력 2022-05-20 17:24   수정 2022-05-21 00:07

우리 방송 이념은 1980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시 강제적 통폐합은 공공성, 다양성, 지역성, 재난방송 등의 콘텐츠 제공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방송 환경은 변했고 이념도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신료에 대한 논의는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1980년 공영방송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기능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 이제 막 무대에 오른 윤석열 정부 방송정책의 의지는 수신료 문제에 대한 해법 제시에서 나타날 것이다. ‘수신료 폐지’라는 다섯 글자는 방송산업 위기 해결의 도화선을 의미한다.

TV가 콘텐츠를 독점하던 시대가 있었다. 수신료 제도는 공영방송의 재정 독립과 공익 콘텐츠 제공의 명분이었다. 요즘 교양(정보)과 다양성, 지역성 콘텐츠는 유튜브와 포털사이트에서 소비된다. 오락과 드라마에서는 종합편성채널,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가 강세를 보인다. 공영방송의 유일한 가치는 재난방송에 남아 있다. 방송의 콘텐츠 독점 시대는 마침표를 찍었다. 지상파방송사 독과점 시장에서 PP, 종편이 참여한 내수 경쟁 시장으로, 그리고 이제는 OTT가 가세한 글로벌 경쟁 시장으로 변화한 방송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매체에서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쇼핑하는 자유시장을 의미한다. 공영방송의 수신료 징수에는 새로운 명분이 필요하다.

앞으로 방송정책은 정부가 국민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차원에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 차원에서 수립돼야 한다. 수신료 문제가 대표적이다. TV가 콘텐츠를 독점하던 시기에 공급자 시각에서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한 수신료 정책은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가 거부하는 수신료를 공급자가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신료를 환불받은 가구는 증가 추세로, 지난해는 4만5000가구를 넘었다. 수신료 분리 징수에 70% 이상의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 영국 BBC는 2028년부터 수신료를 폐지할 계획이다.

수신료 폐지는 공영방송 폐지와 다르다. 재원의 현실적 대안 모색을 의미한다. 다만, 공영방송의 경쟁력 회복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은 필요하다. 그간 우리 방송정책은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오히려 시장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고 좀비기업을 보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광고 판매와 배분 방식, 다양성을 빙자한 부실 방송사업자 살려내기, 제작 지원사업의 맹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불량제작자 생계 지원이 대표적 사례다. 세금으로 저품질 콘텐츠를 양산하고, 소비자의 외면을 초래하고, 시장이 축소되는 악순환 고리의 원인이 됐다. 경쟁에서 자연도태하는 사업자의 발생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량 사업자는 사라지고, 더 경쟁력 있는 사업자가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시장에서 소비자는 행복해지고 산업은 성장한다. 수신료가 성과 없는 지원책이어서는 안 된다.

현행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된 수신료 문제 해결 방식은 정부의 방송산업에 대한 시각과 위기 극복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가늠자라고 할 수 있다. 얼마로 인상하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방송시장 성격 규정에 따른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재정 확보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공영방송의 필요성과 적정 규모에 대한 논의는 별개 문제다. 수신료를 폐지하고 공익광고, 타이틀 스폰서나 다양한 수익사업을 강화하고, 보유 자산을 합리적으로 재분배하도록 하고, 부족한 재원은 국가가 보조해주는 등 새로운 대안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수신료 문제 해결에는 창의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창의성으로 경쟁하는 방송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정책적 변곡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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