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취임 후 처음으로 만났다. 장소는 삼성전자의 경기 평택캠퍼스. 이날 오후 오산 미국 공군기지에 도착해 삼성 평택캠퍼스로 직행한 바이든 대통령을 먼저 도착한 윤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접했다.
한·미 정상이 삼성 평택캠퍼스에 함께 방문해 반도체 생산시설을 둘러본 것은 한·미 상호방위조약(1953년), 한·미 자유무역협정(2007년) 등을 기폭제로 확대 발전한 양국의 동맹이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경제안보 동맹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한국의 반도체 공장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한 것도 이례적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 부회장의 안내로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공장을 둘러본 뒤 “반도체가 우리 미래를 책임질 국가 안보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한 인센티브와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의 첨단 소재·장비·설계 기업들의 한국 투자에 큰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어 “오늘 방문을 계기로 한·미 관계가 첨단기술과 공급망 협력에 기반한 경제안보 동맹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이후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핵심 소비재 공급 부족,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로 인한 공급망 교란 등을 고려할 때 국가 안보는 서로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끼리 더 강화해야 한다”며 “한국처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들과 협력해 공급망을 회복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정상회담을 한다. 양국은 정상회담 직후 경제안보, 북핵 대응, 역내 공동 협력 등을 포괄하는 합의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2일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면담한다. 2박3일 방한 일정을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미·일 정상회담을 한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정상회의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출범 선언을 위한 정상회의도 주도한다.
"삼성, 美와 긴밀한 경제 관계 유지"
세계 반도체업계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미국 정부가 한국과의 경제안보 동맹에서 반도체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반도체 시장의 삼각 축에서 삼성전자를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미가 반도체 동맹을 통해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려는 의도를 보여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두 정상을 영접하고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이날 잡혀 있던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평택캠퍼스에서 대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2부는 이날 ‘회계 부정·부당합병’ 관련 공판에 이 부회장의 불출석을 허가했다.
이 부회장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세계 최초로 개발한 3㎚ 공정의 차세대 반도체를 선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3㎚ 공정은 세계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생산라인이다.
이 부회장은 반도체 생산라인 시찰 뒤 열린 행사에서 영어로 환영 인사를 하며 양국 정상을 소개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이면서 기술적으로 진보한 반도체 생산 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또 미국과 아주 긴밀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반도체는 세계 경쟁을 견인하며, 많은 국가가 인터넷 접근·데이터베이스 활용 등을 반도체를 통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인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 시장점유율은 41.9%(2021년 4분기)다. SK하이닉스와 합치면 70%를 넘는다. 파운드리에선 대만 TSMC에 이은 세계 2위다. 시장점유율은 18.3%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D램 시장에서 사실상 독주하고 있는 데다 파운드리 부문에선 TSMC를 견제할 유일한 카드로 평가하고 있다. 애플, 퀄컴 등도 TSMC와 삼성전자 등에 칩 제조를 함께 맡기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가 바이든 대통령의 평택 방문에 동행한 것도 이 같은 반도체 생태계를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를 통해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TSMC나 삼성전자와의 관계를 강화해 중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을 제한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화웨이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기린’처럼 반도체 설계 경쟁력을 갖춘다고 해도 파운드리가 없으면 현실화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든든한 반도체 우군을 얻은 셈이다.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 있는 글로벌 고객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설비투자 때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인허가 과정을 일원화해 처리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지난해 1280억달러(약 162조3000억원)였던 반도체 수출을 2027년 1700억달러(약 215조6000억원)로 30% 이상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박신영/정지은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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