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발의된 법안 가운데 교사들의 수업 자료에도 저작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게 있다. 교육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저작권법 일부 개정안’이다. 핵심은 초·중·고교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는 수업자료에 대해 저작권 사용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물론 각종 교재의 그림과 도안, 다큐멘터리물이 해당된다. 지금까지 이런 저작물은 무료로 교실에서 활용돼왔다. 이 법이 통과되면 당장 연간 69억원가량이 지출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돈은 신탁단체를 통해 저작권자에게 간다. 반대론도 만만찮다. 대표적 ‘공익’인 공교육의 교재에까지 저작권료를 내는 게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넘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마구 쓰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있지만, 저작권료 지급이 교사의 저작물 사용을 활성화할 것이라는 긍정론도 있다. 어느 쪽이 타당할까.
더구나 저작권 같은 지식재산권은 현대사회의 주요한 사적 재산이다. 개인 재산권은 헌법이 배타적 가치를 보장하고 있다. 하위 법률로 헌법의 그런 취지를 이행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지식산업이 융성해지고, 저작권 확보를 위한 창의성도 한층 발휘될 것이다.
코로나 쇼크를 거치면서 학교에서도 비대면 수업, 온라인 교육이 급격히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 개인을 대리해 각 교육청이나 중앙정부가 저작권에 따른 사용료를 지급한다면 일선 교사들은 다양한 저작물을 수업에 적극 활용할 것이다. 교사가 마음 놓고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주장하는 공교육 정상화, 학교 교실의 수준 높이기에 도움 된다. 남아도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이런 데 우선 활용해야 한다. 학생은 매년 크게 줄어드는데 각 교육청으로 가는 교부금은 거꾸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법에 따른 것인데, 이 법을 개정하라는 여론이 갈수록 비등해진다. 그런 여론에 따르는 차원에서도 여유 있는 교부금을 이런 분야에 쓸 필요가 있다. 교사나 학교가 모든 수업의 모든 교재에 대해 일일이 저작권료를 챙기는 게 아니라, 교육청이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 등에 저작권자를 대신해 일괄 지급하면 간단한 행정처리만으로 결제에서도 복잡한 과정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학교와 일선 교사의 위축이 큰 걱정이다. 저작권은 그 내용부터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저작권 보호나 보상 방식은 더 복잡하다. 경제적으로 계산하는 게 쉽지 않다. 저작권자와 사용자의 시각이 크게 다를 수 있는 데다 중개자도 마땅찮다. 저작권을 둘러싼 권리와 침해·보상 등에서 분쟁이 많은 이유다. 처음에는 값싸게 출발해도 저작권 사용료가 해마다 급증할 수 있고, 협회 등을 내세운 간접 중개 계산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결국 교사 개인의 책임 문제로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학교나 교육청은 보수적인 곳이다. 보상 방식과 계산에서 저작권 업계의 시각과 다를 수 있다. 보상금을 간접 지급하거나 후지급으로 시작한다 해도 문제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교사들은 저작권물을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갈 공산이 크다.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가 개인 책임으로 될 때의 위험을 어느 교사가 감내하겠나. 지금처럼 법에 따라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 편하게 수업에 활용할 때와 달리 교재가 전반적으로 부실해질 수 있다. 더구나 저작권물은 범위가 매우 넓어 사용자가 사전에 일일이 점검하기도 쉽지 않다. 수업자료 준비에서 교사들이 위축되면 처음 의도와 달리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니 지금처럼 공교육, 학교 교실에서의 교재는 아예 저작권의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문제의 소지를 막는 길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많다고 하지만 쓸 곳이 많다. 더구나 법이 바뀌면 학교로 지원되는 이 돈은 줄어들 것이고, 최악의 경우 중단될 수도 있다. 그때는 저작권물 사용료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늘어나는 교사들의 행정업무도 부담이다.
넘치는 교육 교부금만 바라보는 주장이라면 숙고가 필요하다. 다른 재정 자금처럼 이것도 화수분은 아니다. 제각각 의미가 있는 두 가치가 충돌한다면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을 동시에 보면서 차분한 공론화로 준비를 좀 더 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다. 어느 쪽으로 가든 학교 교육과 현대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더 많이 수용하면서 공교육이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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