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면 문과 가래요"…상위권 '이과 쏠림' 가속

입력 2022-05-22 17:24   수정 2022-05-23 00:08

“지난해 국어 기말고사 평균 점수 1, 2, 3등 반이 모두 이과반이었어요. 적성을 따져 문·이과를 선택하기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이과로 몰리는 경향이 뚜렷해졌어요.”

경기도에서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는 신모씨는 통합 수능 체제 이후 상위권 학생들의 ‘이과 쏠림 현상’이 심해진 사실을 실감했다. 통합 수능 영향으로 문과 수험생이 입시에서 일방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입시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수능에서도 ‘이과의 문과 침공’이 또다시 반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입시를 거치며 통합 수능에서 문과가 불리하다는 사실이 극명히 드러났다. 서울대 문과계열 학과 합격자만 봐도 그렇다.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학년도 서울대 인문·사회·예술 계열의 정시 합격자 486명 중 44.4%인 216명은 이과생이 선택하는 수학 과목인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했다. 서울대 인문계열에 교차 지원한 이과생이 최대 44.4%에 이른다는 의미다. 학과별로는 심리학과의 89%, 국어교육과의 50%, 영어교육과의 63%가 이과 수학을 선택했다.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에 이과생이 다수 합격한 이유는 통합 수능 수학에서 이과가 문과 대비 더 높은 표준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원점수를 받아도 이를 표준점수로 환산하면 ‘미적분’ ‘기하’를 선택한 학생의 점수가 더 높아진다. 예를 들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학생과 ‘미적분’을 선택한 학생은 서로 다른 문제로 서로 다른 모집단에서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이들을 원점수로 비교하지 않고 표준점수로 환산해 비교한다. 이때 본인과 같은 선택과목으로 시험을 본 다른 학생들이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해야 본인의 표준점수도 높게 나온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이 모이는 선택과목을 택해야 유리해지는 셈이다.

2022학년도 수능 기준으로 똑같이 만점을 받아도 이과 과목의 표준점수가 더 높게 나온다. 전 과목 만점 기준으로 이과생 점수는 문과생보다 16점이나 높아진다. 이 때문에 이과생들이 문과생 대비 높은 표준점수를 무기로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에 지원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 아래 대학 자연계열 대신 한 단계 높은 대학의 인문계열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과 수학이 표준점수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문·이과 적성과 관계없이 상위권 학생은 이과로 몰리는 경향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치러진 교육청 모의고사에서는 수학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학생들이 공통과목에서도 현저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종로학원 조사 결과 미적분을 선택한 고3은 공통과목에서 74점 만점에 평균 36.2점을 받았으나, ‘확률과 통계’ 선택자는 20.9점을 받아 격차가 15.3점까지 벌어졌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학에서는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한 학생들이 높은 표준점수를 받고 최상위권 1·2등급도 미적분과 기하를 택한 학생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는 재수생 문과생들이 미적분을 선택하고 있으며 고3 중에서도 문과 학생이지만 미적분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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