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최초의 한국 전통양식 사찰 '분황사'가 지난 21일 부다가야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한국의 미(美)’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낯선 현지 기후에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도는 여름철 한낮 기온이 48~49도까지 치솟는다. 하늘을 날던 새가 탈진해 땅으로 뚝뚝 떨어질 정도다. 분황사 인근에 못이 있어 우기에는 성인 남성 키만큼 물이 들이찬다.
대웅전 건설을 총괄한 대목장 박철수 씨(67)는 “폭염과 코로나19 와중에 2년간 건설 현장을 지키느라 유서까지 미리 써놓고 일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드센 인도 벌레들이 갉아먹기 쉬운 목재 대신 기둥은 물론 추녀, 서까래, 공포 등을 전부 콘크리트로 지었다”며 “우기에도 굳건한 지반을 위해 바다에 다리를 놓을 때 쓰는 ‘잠함공법’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고층 빌딩, 아파트 등 건설을 담당하다가 약 20년째 한옥을 짓고 있다. 콘크리트 건물 건설 경험, 목조 한옥 건설 경험이 바탕이 됐기에 대웅전을 지을 수 있었다.
박씨는 “콘크리트로 한옥의 곡선미를 구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특히 정면에서 보면 학이 날아가는 것 같은 처마의 허리곡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공포. 공포는 한옥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대는 구조물로, 보통 나무로 짜 맞춘다. 분황사는 공포도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그는 공포가 무사히 올라갔을 때 "혼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숱한 어려움 속에도 사고 없이 대웅전을 완공했다는 데 자부심과 감사함을 드러냈다. "오직 부처님 집을 지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했습니다."
단청팀의 사정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항공 규제로 인해 국내 안료를 들여오지 못해 일주일간 현지 상점을 돌며 단청 재료를 찾아 헤매야 했다. 단청장 이연수 금화불교미술원 대표(60)는 “콘크리트 건물은 목조에 비해 벽면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불교 설화 그림을 최대한 많이 그려넣었다”며 “현지 기술이 부족해 콘크리트 표면이 거칠었기 때문에 한국 단청의 우아한 멋을 살리기 위해서는 2~3번 더 안료를 덧칠하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했다.
대웅전에 모신 본존불, 아난존자, 가섭존자 불상도 현지 기후를 고려했다. 습기에 쉽게 뒤틀릴 수 있는 목불 대신 금동불을 택했다. 종단의 자문 등을 거쳐 1년간 한국에서 제작 후 부다가야로 옮겼다. 불상 조성을 담당한 이재윤 여진불교조각연구소 팀장(46)은 “형태가 변형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옻칠을 한 뒤 금박과 금분을 입혔다”며 “인도풍을 감안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한국적인 색채를 담아내기 위해 조선시대 여러 불상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부다가야=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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