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 수상작 등 단편 9편 한권에 담아"

입력 2022-05-23 17:42   수정 2022-05-24 00:21

“인생이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툭, 끊기기도 하는 것이다.”(단편 ‘유명한 정희’ 중)

빼어난 문학성과 정교한 서사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 온 중견 작가 이장욱이 3년 만에 네 번째 소설집 《트로츠키와 야생란》(창비·사진)을 펴냈다. ‘유명한 정희’ ‘잠수종과 독’ 등 2020년부터 2년 동안 쓴 단편 아홉 편을 담았다. ‘잠수종과 독’은 올초 이상문학상 우수작에 뽑힌 작품이다.

우리의 손을 벗어나 마음대로 흘러가는 인생, 책은 이런 인생의 불가해함을 얘기한다. 인생은 언제나 자신의 방식으로 흘러가고, 소설 속 인물들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일들이 인생을 이룬다고 생각하면 허망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한번 선이 닿으면 그것으로 인생이 결정된다. 그렇다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버릴 만큼 잠깐이라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코끼리 고구마 그리고 오조의 발목을 잡은 손들’ 중)

‘잠수종과 독’에서 주목받는 사진작가 현우는 인터뷰 장소로 향하던 중 불에 타는 건물을 발견한다. 본능적으로 조수석에 있던 카메라를 집어 들고 좌회전하는 순간 노란불에 속도를 높인 맞은편 차와 충돌해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현우의 연인 공이 의사로 일하는 병원에 방화범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실려 온다. 공은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현우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라는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며 주사기를 든다.

기억과 그리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며 떠나간 이들을 품고 살아간다. 표제작 ‘트로츠키와 야생란’은 나와 너의 추억이 깃든 러시아에 홀로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유명한 정희’는 초등학교 친구인 정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삶과 죽음,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세심히 풀어내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내려놓지 않는다.

이 작가는 1994년 시인, 2005년 소설가로 등단해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평론가, 문예창작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장편 《천국보다 낯선》 《캐럴》 등을 썼고 젊은작가상, 김유정문학상, 대산문학상(시 부문) 등을 받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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