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구직난을 겪고 있는데 기업들은 정작 필요한 인력을 채우지 못하는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화하고 있다. 반도체 미래차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분야에서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고용 불안정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 산업 경쟁력에 장애 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요 늘어난 공대 정원은 오히려 줄어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5인 이상 민간 사업체의 ‘미충원 인원’은 10만8695명으로 2011년 2분기(11만7869명) 후 가장 많았다. 2020년 하반기(6만1822명)에 비해 4만6873명(75.8%)이나 늘어난 수치다. 기업들은 80만여 명 구인에 나섰지만 채용은 69만여 명에 그쳤다.이 같은 일자리 미스매치는 이공계열을 중심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를 분석한 결과 공학계열 대학 입학정원은 2019년 9만9474명에서 지난해 9만5855명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사회계열의 입학정원이 9만7020명에서 10만2606명으로 증가한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올해 상반기 대기업 채용 계획 인원의 61.0%가 이공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지난해 4년제 일반대학 졸업자 가운데 이공계열은 37.7%로 인문계열(43.5%)보다 적었다. 일자리 미스매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력 수급 구조인 것이다. 이군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 구조는 융복합시대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는데 대학 등 기존 정규교육은 옛 산업 구조에 맞춰진 틀이 전혀 바뀌지 않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산업 필요인력 10명 중 3명 못 구해
일자리 미스매치는 신산업 분야일수록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4차 산업혁명 분야 인력 부족률은 29.4%에 달했다. 업계가 필요한 인력 10명 중 7명밖에 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드론(55%), 3D프린팅·로봇(35%), 사물인터넷·AI·블록체인·첨단소재·신재생에너지(25%), 컴퓨팅기술(15%) 등 분야에서 인력난이 두드러진 것으로 조사됐다.이 같은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는 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한국의 미래차 전문 인력 현원과 공급 능력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 연구개발 인력은 2020년 미국 11만 명, 독일 12만6000명(엔지니어)인 반면 한국은 3만7000명에 불과했다. 더욱이 한국의 관련 인력은 2018년 이후 2.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 컨설팅업체인 갈렙앤컴퍼니는 최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디지털 신기술 분야 전문인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상이 심각하다”며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인력 경쟁력은 주요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대졸자 과반은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
산업계는 직업계고와 대학이 제대로 된 인력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직업계고에서 대학생들도 어려워하는 AI와 같은 분야를 가르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대학은 산업 수요 자체를 제대로 못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의 52.3%가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를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공을 가진 인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엑셈의 고평석 상무는 “신입사원들이 대부분 빅데이터 관련 지식을 대학보다는 유튜브에서 배웠다고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대학 경쟁력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 4월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 QS가 발표한 ‘2022년 세계 대학 평가 전공별 순위’에서 KAIST는 작년 16위에서 올해 20위로, 서울대는 같은 기간 27위에서 34위로 추락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신산업 분야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정규 교육에서부터 역량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국가 차원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용희/최예린 기자 ky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