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떨기보다 무시'…180도 달라진 韓美 새 대북전략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2-05-24 10:09   수정 2022-05-24 10:10


"안녕하신가, 이상 끝(Hello,period)"

'김정은에게 보낼 메시지가 있느냐'는 언론 질문에 방한중이던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이례적인 초간결 답변이다.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당근책은 물론이고 일체의 대화도 없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다. 김정은의 편지를 '러브레터'라 자랑하고 대화에 목매던 전임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반응이다. 아무리 폭압적인 독재국가라지만 협상상대방 국가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무시와 무례의 정서가 한가득이다.
◆윤석열·바이든 입에서 동시에 나온 '끝'
'김정은과의 만남에 전제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바이든은 "그가 얼마나 진실하고 진지한 지에 달려 있다"고 일축했다. 지금 같은 태도로는 어렵다는 의지가 전해진다. 김정은을 무시 또는 방치하는 듯한 바이든의 발언들을 듣고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미국대사는 "오바마 정부 때의 전략적 인내 정책과 놀랍도록 닮았다"고 평가했다.

전략적 인내란 적극적인 협상도 적극적인 압박도 취하지 않으면서 북의 붕괴를 기다리는 다소 소극적인 북핵 전략을 일컫는다. 하지만 '핵에는 핵'이라는 한미공동성명을 내놓고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바이든의 행보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와는 구별된다. 군사적 옵션과 액션플랜을 구체화한 것을 보면 전략적 인내라기보다 전략적 압박 단계로의 이행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CNN 인터뷰에서도 결연한 의지가 읽힌다. 취임 후 가진 첫 언론인터뷰에서 윤 대통령도 "북한을 달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며 바이든처럼 '끝'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대화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 시작돼야 한다”는 말에서도 더 이상 의미없이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감지된다. 윤 대통령은 "한국과 동맹국들은 어떤 형태의 도발에도 준비가 돼 있다”며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도발을 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담담한 요구 역시 북의 한 마디와 제스쳐에 흥분하고 호들갑떨던 이전 정부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김정은 '우리는 지속가증한 상태인지' 자문해야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이 동시에 쏟아낸 메시지들은 적극적인 협상도 적극적인 압박도 취하지 않는 소극적인 전략적 인내와는 분명 다른 뉘앙스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플레이어인 중국에 대한 입장도 달라졌다. 오바마 대통령 이래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현상 변경 시도'를 억제하는 힘을 중국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을 달래고 눈치보는 행태와도 결별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밀착하는 한미동맹에 대해 중국이 사드사태 때처럼 “너무 민감하게 나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발신했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모호한 전략 뒤에 숨어서 중국에 온갖 수모를 자초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이 모든 변화들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모라토리움을 지난 3월말 북한이 파기한 데 따른 불가피한 대응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CNN 인터뷰에서 “북한이 현재와 같은 상태를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의 각성을 촉구하는 쓴소리도 내놨다. 동시에 "북한을 망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며 전략적 압박의 목표가 '한반도에서의 공동번영'이라는 것을 천명했다. 변화를 택할 경우 담대하게 지원하겠다는 의지도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핵을 움켜쥐면 배를 곯으면서도 버틸 수 있다는 북의 생각은 순진한 오판이다.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과 전세계 자유진형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북한 인민의 불만은 점점 커질 것이다. '끝'에 몰린 북한의 유일한 돌파구는 김정은의 과감한 발상의 전환 뿐이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상태'로 이행하기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통큰 결단이 절실하다.

백광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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