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면들에 나온 음악을 기억하는가. 내용은 잔인하지만 음악은 오히려 밝고 경쾌하다. 오스트리아 출신 음악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가 만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다. 이 곡은 ‘쿵짝짝’ 3박자의 전형적인 왈츠 음악이다. 선혈이 낭자한 죽음의 게임에 춤곡이 울려 퍼지다니, 모순되면서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오징어 게임’에선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게임 참가자들의 복잡한 심정을 동시에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 그 안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강조하기 위해 상반된 분위기의 왈츠 음악을 사용한 것이다.
슈트라우스 2세는 다양한 왈츠 음악을 만들었다. 아버지를 닮아 어렸을 때부터 왈츠를 즐긴 영향이 컸다. 그의 성 뒤에 굳이 ‘2세’를 붙여 말하는 이유는 아버지와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점은 부자(父子) 모두 왈츠 음악의 대가라는 사실. 아버지는 ‘왈츠의 아버지’, 아들은 ‘왈츠의 왕’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는 평범한 부자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아버지는 그가 음악가가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하며 은행가나 법률가가 되라고 했다. 그럼에도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몰래 음악을 배우러 다녔다. 관객과 비평가들은 그의 음악에 호평을 보냈다.
하지만 또다시 아버지가 길을 막아섰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아들에게 일거리를 주지 못하도록 했다. 아버지의 유별난 행동을 두고 아들의 재능을 크게 질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들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그를 계속 배척한 것이다.
그도 초반엔 아버지처럼 무도회에서 춤을 추기 위한 반주 정도로 왈츠 음악을 만들었다. 하지만 1860년대 후반부터 춤 반주가 아닌 감상을 위한 독립 음악 장르로 재탄생시켰다. 이를 위해 그는 도입부를 길고 아름다운 선율로 바꾸고, 관현악 편성으로 더욱 음악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가 만든 왈츠 음악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봄의 소리 왈츠’ 등을 비롯해 500여 곡에 달한다. 브람스, 바그너 등 거장들도 슈트라우스 2세의 실력을 인정했다. 그와 가깝게 지낸 브람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악보에 이런 글귀를 적었다. “불행히도 브람스의 작품이 아님.”
화사한 5월의 봄날,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을 보면 자연스레 좋은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만큼 이 순간에 잘 어울리는 곡들이 있을까. 오늘만큼은 짜증 나고 우울한 감정은 잊고, 왈츠 선율에 맞춰 살랑살랑 몸도 마음도 가볍게 가져보자.
○‘7과 3의 예술’에서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큰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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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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