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세계화의 종말 시작됐다

입력 2022-05-25 17:30   수정 2022-05-26 00:22

“The world is closing in. Did you ever think that we could be so close like brothers?(생각해 본 적 있나요? 우리가 이렇게 형제처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1991년 스콜피언스 ‘wind of change’ )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는 냉전 시대의 끝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1990년 독일 통일과 1991년 소비에트연방(소련) 붕괴로 1940년 이후 계속됐던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도는 막을 내렸다.

이후 열린 것은 세계화의 시대였다. 미국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1999년 출간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이 변화를 ‘기술·정보·금융의 민주화’라고 했다. 세계화의 특징은 ‘연결성’이다. 지구 반대편 금융회사의 파산이 우리나라에 금융위기를 몰고 온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 세계는 하나로 엮여 있다.
위협받는 자유무역
하지만 세계화 시대는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주주 서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리가 지난 30년간 경험한 세계화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했다.

전쟁 이후 독자 생존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세계를 엄습했다. 세계적 곡창지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곡물 가격을 폭등시켰다. 식량 부족을 우려한 다른 나라들까지 수출 금지에 나섰다. 인도의 밀과 설탕,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중단이 대표적이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식량을 수입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라지고 있다. 에너지와 원자재 상황도 비슷하다. 자유무역주의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자유무역주의는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상품에 집중하고 부족한 것은 바꾸면 서로 이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후진국은 원료만 생산하고, 선진국은 첨단 제품을 만드는 분업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의문이 따라붙었다.

신자유주의를 주창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되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대표적이다. 부자 나라들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든다’며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된 국제 무역 체제를 만들어 냈다고 지적했다.
'줄타기 외교' 이젠 안 통해
지금은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따져보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다른 요인으로 자유무역이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 미·중 갈등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는 것을 목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새로운 냉전시대를 열고 있다. 편 가르기는 이미 시작됐다. 애덤 포즌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최근 “러시아 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 중심의 두 개 블록으로 분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수출 경제를 가졌다. 자원도 식량도 모두 수입해야 한다. 독자 생존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에 중국은 수출입 총액의 23.9%(2020년 기준)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하지만 일본은 최근 경제안보법을 확정하면서 ‘경제도 확실한 미국 편’이라고 선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미 동맹은 한 단계 격상됐다. 그러나 더 확실한 선택의 시기가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미·중 사이에 ‘줄타기 외교’를 하다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지 못한 우크라이나와 같은 운명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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