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나오고 수억 쏟으면 뭐하나…홍보는 모르는 회사들 [류은혁의 기업분석실]

입력 2022-05-29 06:55   수정 2022-05-29 16:50


비상장사나 상장사 등 기업들을 취재하다보면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경험하게 된다. 소비자나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광고 등 비용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부정적인 이슈가 터지면 피하기 급급한 회사들을 상대할 때다. 당장은 '기자의 전화를 피했다' 정도에 그칠지는 몰라도, 이러한 회사 분위기는 결국 주주들이나 투자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곤 한다. 바로 '광고'만 신경쓰고 '홍보'는 외면하는 회사들이다.

'홍보'의 사전적 의미는 '널리 알리거나 그 소식이나 보도'이다. 여기에 기업투자활동(IR)도 해당된다. 기업을 알리거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높이는데는 홍보(PR)나 IR담당자는 필수적인 인력이다. 비상장사의 경우 홍보담당자가 기업 전반의 홍보나 대외 리스크 관리를 담당한다. 상장사의 경우 IR담당자가 소액주주 등 투자자 대응이나 공시 담당을 맡고 있다.

"적극적인 대응" 홍보·IR활동, 손해가 아닌 '기회'
과거 매각 철회 등의 이슈가 발생한 A 회사를 취재하면서 "IR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으니 연락처를 남겨 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러한 답변은 수일째 이어졌고,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A 회사는 현재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뒤늦게 (무대응을 했던 같은 담당자가) IR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무대응은 상장사들이 언론을 피하는 흔한 방법이다. 일부 업체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는 공개하지만 꺼림직한 정보는 숨기는데 급급하다. 회사에 도움되는 보도자료를 뿌릴 때는 홍보대행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막상 불편한 공시가 나오면 온종일 전화가 연결되지 않거나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며 취재를 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른 사례도 있다. 답을 알고 있지만 입을 닫는 게 아닌, 정말 몰라서 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다. 상장사는 이해관계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투명하고 정확하게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경영진들은 IR담당자에게 해당 내용을 공유하지 않기도 한다. IR담당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투자자들에게 '비공개 정보'가 된다. 중요한 계약이나 비밀유지 계약이 아니라면, 이러한 경우도 투자자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셈이다.

최근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상장까지 가는 기업들의 수순에서 '광고'는 빼놓을 없는 코스가 됐다. 특히나 플랫폼 사업의 경우 소비자나 이용자들을 유입시켜야 하기 때문에 투자금 대부분을 마케팅비용으로 집행하되 대부분은 '광고비'로 책정하는 경우들이 많다.

문제는 기업들이 유명 연예인 광고료에는 적게는 수십원에서 수백억원을 쓰면서, 정작 내부 홍보인력이나 예산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광고를 통해 회사 인지도가 올라갔음에도 회사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는 홍보나 IR담당자들은 접촉하기 어렵다거나 소액주주나 언론을 피해 도망을 다니기도 한다. 이 와중에 경영진은 그저 지켜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업들을 두고 투자업계 안팎에서 '빛좋은 개살구'가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리스크 방어나 투자자들의 소통 창구는 외면한 채 투자금을 고스란히 광고모델과 광고에만 몰아버리고 있어서다.

한국거래소 규정상 상장사는 IR담당자인 공시책임자와 공시담당자를 선임하고 거래소에 보고해야 한다. 그만큼 IR담당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IR활동은 투자자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한 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럼에도 상당 수 상장사들은 투자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는 안중에도 없다. 궁금증에는 나 몰라라 하면서, 하고 싶은 말만 확성기 틀듯이 일방적으로 내뱉고는 IR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자찬만 하고 있다.
'발란 당하다' 외치더니…결국 소비자가 당했다
최근 벤처캐피탈(VC) 시장에선 배우 김혜수를 내세운 명품 전자상거래(e커머스) 업체 '발란'이 화두다. 발란은 1000억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 유치하고, 기업공개(IPO)까지 나설 계획이었다. 연초만 하더라도 기업가치가 8000억원에 달한다며 무난한 투자유치를 기대했다.

이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물론 투자시장 안팎에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공정거래위원회가 반품비 과다 청구 논란 등이 제기된 발란을 현장 조사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이미지에 불을 붙인 건 유튜브채널 '네고왕' 출연이었다. 발란은 작년 18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광고비로만 190억원을 쏟는 등 거래액 늘리기에 집중해왔다. 네고왕 출연으로 거래액이 더욱 급증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할인 프로모션을 약속했던 발란은 영상이 공개된 후 제품 가격을 슬그머니 인상해 '꼼수' 논란이 불거졌다. 발란이 네고왕에 출연하기 위해 쏟아부은 마케팅 비용만 1억원으로 알려졌다. 네고왕 출연 이후 발생한 손실만 50억원가량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건 이후 내놓은 해명이 소비자들의 화를 더 돋우기도 했다. 발란 측은 "(네고왕에서 약속한) 할인 쿠폰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서버 오류로 일부 상품 가격의 변동이 있었고, 현재 다시 수정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인상된 가격으로 구매한 고객에게는 환불 등 보상책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부의 목소리는 다른 듯하다. 발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관계자는 이번 꼼수 논란과 관련해 홍보 등 임직원들에게 공지하지 않고, 일부 임원들끼리 결정한 사항이라고 말한다. 최형록 발란 대표와 관련해서는 홍보담당자와 의논 과정에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던 부분을 스스로 발로 차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들의 신뢰는 물론 내부 직원의 믿음을 져버린 탓일까. 최근 발란 내부에서 주요 인력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다. 물류 담당자부터 최고전략책임자(CSO), 홍보총괄 부사장(VP)까지 중요 직책들이 줄줄이 퇴사했다. 발란은 배우 김혜수를 광고모델로 내세우고 있다. 광고모델료만 연간 8억원 넘게 쓰고 있다.

공정위 조사 이슈와 관련해 언론 대응도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명성 있는 대응이 아닌, 숨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일부 기자들에겐 공정위 조사 내용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식으로 무마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악재성 이슈나 투자 정보라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소비자·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진들은 홍보나 IR이 손해가 아닌 '기회'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눈앞에 드러난 악재에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식의 접근방식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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