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화학기업 미국 듀폰과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용 유리기판 업체인 코닝 관계자들은 최근 2년간 경기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중견기업 일신하이폴리(옛 일신화학공업) 공장을 거의 매주 찾았다.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던 2020년 초엔 각국에서 마스크를 긴급 공수해 전달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자칫 이 회사가 만드는 전자광학용 필름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까 취한 조치들이다. 스마트폰과 TV, 노트북, 냉장고 같은 모든 전자제품이 이 회사의 필름 없이는 생산할 수 없는 구조이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일신하이폴리는 농업용·산업용 필름 생산 국내 1위 업체이자 글로벌 전자광학필름 시장까지 석권한 알짜 기술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2500억원 규모로 ‘중견기업’ 수준이지만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온리 원’ 품목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전자광학용 필름 중 하나인 드라이필름용 보호필름이 대표적이다. 일신하이폴리는 이 분야에서 세계 2위 생산량을 자랑한다. 모든 전자제품에는 초박막 회로기판(플렉시블PCB)이 들어가는데 기판의 주재료가 드라이필름이다. 전 세계에서 드라이필름을 만드는 기업은 30여 곳에 달하지만, 보호필름 생산 업체는 단 세 곳에 불과할 정도로 고난도 기술이 요구된다.
세계 최대 액정유리 보호필름 공급업체이기도 하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LCD(액정표시장치) 등 디스플레이패널에는 초박막 유리기판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데, 이 시장을 장악한 코닝에 보호필름을 가장 많이 공급하고 있다.
임동욱 일신하이폴리 회장(사진)은 “선대 회장 때부터 기술개발에 중점을 둬 100여 가지 농업용 필름을 국내 최초로 내놨다”며 “현재 개발 중인 의료폐기물용 필름, 컬러강판용 필름 등 하이테크 제품도 연내 상용화하겠다”고 말했다.
일신하이폴리는 1967년 창립 후 55년간 ‘국내 최초 개발’ 기록을 잇달아 세워왔다. 초창기엔 ‘학표’ 브랜드 비닐하우스용 필름으로 입지를 굳혔다. 잡초 방지용 특수 멀칭필름, 가축 사료용 곤포 사일리지 필름 등도 국내 최초로 개발해 보급했다. 수출용 제품을 컨테이너에 싣기 전 래핑할 때 쓰이는 산업용 필름(팰릿 스트레치필름)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현재 삼성SDI와 LG화학, 롯데칠성음료, 농심, CJ, 신세계, 한화솔루션 등에 산업용 필름을 납품하고 있다.
소위 ‘온리 원’ 기술을 확보하기까지 시련도 적지 않았다. 창업주인 고(故) 임오순 회장의 장남으로 2003년 경영권을 넘겨받은 임동욱 회장은 농업용·산업용 필름만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2005년 전자광학용 필름 국산화에 도전했다. 200억원을 들여 국내 최대 규모 공장을 짓고 최첨단 설비도 구축했지만, 당시 일본 업체들이 장악한 시장을 뚫긴 어려웠다. 4년간 관련 매출은 말 그대로 ‘0원’이었다.
주변에선 “2세 경영자가 사고를 쳤다”고 수군댔고, “무모한 도전”이라는 비아냥도 숱하게 들었다. 벼랑 끝에 몰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달러화와 엔화 가치가 뛰면서 국내외 대기업들이 일본산을 대체할 제품을 물색했고, 잇달아 일신하이폴리로 눈을 돌렸다. 공급 요청이 줄을 이으면서 전자광학필름 매출이 급증했다. 올해 처음으로 전자광학·산업용 필름 등 비농업용 필름 비중이 전체 매출의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임 회장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친환경 생분해성 필름도 수요가 많아져 관련 생산라인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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