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홀렸던 발레음악…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오아시스 같은 작품"

입력 2022-05-26 17:32   수정 2022-05-27 18:32


1897년 5월 22일 오스트리아 빈 궁정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발레 ‘코레아의 신부’가 긴 잠에서 깨어났다. 2022년 5월 25일 한국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인 김여진이 지휘한 한경arte필하모닉의 ‘코레아의 신부’ 전곡 아시아 초연에서다.

125년 전 빈 궁정발레단 감독이던 요제프 바이어(1852~1913)가 작곡한 이 작품은 당시 음악과 안무, 무대장치 등 다방면에서 호평받았다. 하지만 악보 사용권을 놓고 법률 분쟁이 벌어지면서 1901년을 끝으로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2012년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 박사후과정에 있던 박희석 씨(현재 객원교수)가 총악보를 발견했고, 작년에 발췌한 모음곡 형태로 서울과 빈에서 공연했다. 그리고 지난 25일 120분 분량의 전곡이 서울에서 연주됐다.


발레나 오페라 상연을 위해 만든 음악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음악회에서 연주할 때는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도록 재구성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곡 연주는 모험일 수 있지만 이번 공연은 음악회에 최적화한 무대 구성을 통해 음악만으로 부족할 수 있는 드라마를 보완했다. 음악 진행에 맞춰 초연 당시 사진과 대본을 띄워 관객들에게 장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상상력을 돋우며 영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매우 좋았다. 성격과 색깔이 분명한 빈 춤곡들이 음악의 기반을 이루고, 작품이 서사적 의미를 갖는 ‘드라마틱 발레’에 가깝다는 것도 효과적이었다.

김여진과 한경arte필하모닉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이 무대를 온 정성을 다해 준비했음을 관객들에게 아쉬움 없이 전달했다. 현악은 각 파트가 마치 한 악기인 듯 훌륭하게 조율됐고, ‘프레이즈(악구)’마다 표정이 분명했다. 모든 현악기가 균형 있는 조화를 이뤄 풍부한 음향을 만들어내며 장면이 나타내는 정서를 구체적이고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목관은 음색적 효과가 탁월했고, 금관은 고상한 풍채로 최고조를 이끌었다. 타악은 과장되지 않으면서 적절히 효과를 더했다. 여기에 무대의 오케스트라와는 별도로 합창석 양쪽 위의 객석에 배치한 연주자들이 소리를 내는 공간적 구성으로 극적 효과를 크게 높인 것은 음악회에 날개를 단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음향으로 관현악은 ‘하나의 악기’로서 궁극적인 지향점을 찾아갔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공연에 음악적 감동까지 받은 관객들은 감격스러운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이번 공연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오아시스와 같은 작품을 완성도 높은 연주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뜻깊은 무대였다. ‘코레아의 신부’는 19세기 유럽에서 조선이 중국이나 일본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독자적 문화권으로 인식됐다는 것을 확인해준 작품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이 작품에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할 일이 더 있다. 발레 작품인 만큼 안무를 재구성해야 하고, 당시 한반도에 대한 부족한 정보에서 비롯된 일본식 인명과 국적 불명의 의상도 정비해야 한다. 최소한 대본 속에서 발견되는 의아한 풍습과 제도는 조선 말 상황에 비춰 수정하는 게 마땅하다.

국내 관현악단들은 서양 악기를 연주하는 만큼 이번 공연처럼 외국 작곡가들이 한국을 독자적인 문화로 바라본 작품을 더욱 폭넓게 조명하고 무대에 올릴 필요가 있다. 한경arte필하모닉도 ‘코레아의 신부’와 함께 대한제국 국가를 작곡한 프란츠 에케르트의 ‘한국 교향곡’, 엘런 호바네스가 한국을 주제로 작곡한 교향곡 등을 시그니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 '코레아의 신부' 전곡 아시아 초연은 유튜브 https://youtu.be/SUaAhgNNTZY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송주호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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