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이날 중국 매체로는 이례적으로 블링컨 장관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자국 전문가의 분석과 비판을 담은 기사와 사설 두 편을 잇달아 내보냈다. 중국 언론은 정치·외교 사안에선 정부가 공식 입장을 내놓은 뒤 그 발표를 기반으로 기사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환구시보는 블링컨의 발언 가운데 “미국은 신냉전을 바라지 않는다” “대만 문제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고 한 부분 등은 상당히 유화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발언에는 중국을 강자로, 미국을 약자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왕이웨이 인민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환구시보에 “블링컨이 인도태평양프레임워크(IPEF)가 중국을 타깃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서 포용성과 개방성을 다시 강조하는 등 미국의 어조가 최근 상당히 순화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유화적 제스처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양자택일하기를 꺼리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 중국에 따르라고 하는 국제질서는 미국의 규칙”이라고 비판했다.
뤼샹 중국사회과학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에서 역량의 한계를 보여 동맹국들의 의구심이 짙어지고 있다”며 “인도·태평양 전략을 실행에 옮기려면 지역 국가의 신뢰를 확보하는 실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환구시보는 또 사설에서 블링컨이 “중국의 정치 체제를 바꾸려거나 중국의 경제 성장을 방해하려는 게 아니다” 등의 온건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사람은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격언을 인용하면서 “지켜보겠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중국에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이런 겉치레식 발언을 하는 것은 언행 불일치”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신냉전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동시에 IPEF와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을 추진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비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27일 브리핑에서 해당 연설은 “중국 위협을 과장하고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의 발전을 억압해 미국의 패권을 수호하려는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은 자신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세계를 위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