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는 CJ ENM 프로듀서 출신인 김형섭 컬처앤커머스 대표와 손잡고 농업회사 법인 원스피리츠를 세워 원소주를 만들었다. 강원도 원주 쌀을 사용해 감압증류 방식으로 술을 뽑아낸 뒤 옹기에 숙성한 증류식 소주다. 원소주 한 병 가격은 1만4900원. 소주 점유율 1위인 참이슬의 편의점 판매가격 1950원보다 7배 이상 비싸다.
전문가들은 원소주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갖췄다는 점에서 단순히 ‘반짝 셀럽 효과’로 볼 수만은 없다고 진단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차별화한 디자인과 제조 방식, 팬덤 비즈니스 효과를 극대화하는 박씨의 스토리, 팝업스토어로 시작해 희소성을 부각한 마케팅 등이 전략적으로 결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원소주와 더불어 1년 전 편의점 채널에서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킨 ‘곰표 밀맥주’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 사례다. 지난해 5월 편의점 CU가 판매한 곰표 밀맥주는 카스, 테라 등을 단숨에 제치고 맥주 매출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재미와 색다른 맛을 갈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킨 게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주위트에일’ ‘제주펠롱에일’ 등 연달아 히트작을 낸 제주맥주는 무섭게 덩치를 키우면서 지난해 코스닥시장 상장에도 성공했다.
연 9조원 규모의 국내 주류시장은 희석식 소주와 라거 맥주가 약 80%를 점유하고 있다. 오비맥주 ‘카스’가 10년째 가정용 맥주 1위를 차지해 왔고,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이 장기간 소주 시장을 지켰다.
하지만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는 술 시장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업소용과 가정용 비중이 절반씩이었던 이 시장은 코로나19 기간에 가정용 소비 비중이 70%까지 높아졌다.
‘홈술’ ‘혼술’ 문화 확산으로 개개인의 다양한 취향을 저격한 술들이 인기를 끌었다. 크래프트 맥주 판매는 2020년 1180억원에서 지난해 2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윈저’ ‘임페리얼’ 같은 천편일률적인 블렌디드 위스키 대신 개성이 강한 싱글몰트 위스키 수요가 증가한 것도 이 같은 변화의 일환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27.5% 급증한 주류제조면허는 주류 시장의 다변화를 뒷받침할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븐일레븐도 이에 맞서 미국 뉴욕 한인타운에서 먼저 인기를 끈 한국식 전통주 ‘토끼소주’를 선보이고, 7월에는 가수 임창정 씨의 히트곡 ‘소주한잔’에서 이름을 딴 전통 소주를 출시할 계획이다. 한 주류업계 고위 관계자는 “메이저 주류회사들이 신생 브랜드의 성공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를 의식해 기존 제품의 마케팅을 강화하면서도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추진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편의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도 경쟁력 있는 양조 파트너를 찾는 데 혈안이어서 주류 시장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하수정/한경제 기자 agatha77@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