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주거 공간도 걷어내야 할 닫힌 벽이 있다. 발코니다. 베란다 또는 테라스라 불리는 소중한 공간이다. 건물 전면에 배치돼 탁 트인 주변의 전경과 공기를 한껏 접할 수 있게 보장한 매력적인 장소다. 교황의 발코니 아래 광장에서 일어나는 성대한 퍼포먼스나 발코니를 올려다보며 줄리엣에게 구애하던 로미오의 세레나데 장면을 상상해 보면, 공중에 매달린 발코니의 효용성과 낭만적 가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 주거 환경에서 발코니는 항상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았다. 본래 기능은 무시되고 짐 보관소, 세탁 공간, 방을 확장하는 공간 등으로 변형돼 아파트 평수 확장의 욕심만을 채워주는 곳이었다.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가 주거 공간에 혁명적 해결책을 가져다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여러 가정의 다양한 수요를 고려하면서 현대 생활이 가능토록 최적화한 주거 공간 유닛을 도심의 땅 위에 놓인 하나의 좁은 건물 속에 무수히 집적해 넣었으니, 이보다 경제적이고 기능적이며 평등한 도시의 주거 방식이 있었을까? 분명 아파트는 효율적인 주거 방식임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내부 공간을 넓히려는 욕망이 발코니를 희생시켰다. 최소의 외부 공간마저 벽을 변형하거나 유리 창호로 가둬 내부에 편입하려는 도시민의 과욕은 발코니의 순기능을 한국형 아파트 유형에서 아예 퇴출하는 우를 범했다.
아파트의 주 소비층이던 핵가족 사회가 한두 명의 극소가족 형태로 가속화하면서 발코니를 확장해 실내 면적으로 키운 방들이 이제는 그 선호도에서 조금씩 밀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19가 우리 주거 공간까지 침범해 왔고, 위드 코로나 시대에는 바람 유입과 신선한 공기 순환이 매우 중요한 일상의 습관이 됐다. 쾌적한 외부 공간에서의 활동이 선호되며, 초록빛 화초들이 자라날 수 있고 자연 통풍이 용이한 진짜 살아있는 외부 공간은 더 절실해졌다.
주거가 고급스러워질수록 외부 공기 속에 매달린 발코니의 존재가 더 중시될 것이다. 그동안 구박받던 발코니의 역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완전히 마스크를 벗게 되면 발코니에 나가서 청량한 바람을 깊이 호흡하고 싶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