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임금피크제도 문제가 될까요?” 국내 한 연구단체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자 27일 법무법인, 노무법인에는 기업과 근로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대법원은 지난 26일 업무량의 적정한 감소나 정년 연장 등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 기준만으로 직원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광장 노동팀의 경우 27일 하루에만 30건이 넘는 문의를 받았다. 강세영 광장 변호사는 “제조업, 공공기관, 은행, 호텔업계 등 전 업종에 걸쳐 문의가 왔다”며 “임금피크제 운용의 적정성과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물었다”고 설명했다. 한 노무법인 대표 노무사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은 뒤 퇴직한 근로자들의 상담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자문사들도 근로자의 반응을 살피는 등 비상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송 시 소멸시효에 대한 퇴직 근로자들의 문의도 이어졌다.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고령자고용법 위반을 불법행위로 봐서 최대 10년의 소멸시효를 적용하면 퇴직한지 10년 가까이 된 근로자들까지 임금피크제로 손실된 임금차액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다”며 “실제로 퇴직한지 10년 가까이 된 퇴직들로부터 소송문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합리적 이유’에 등장한 업무량·강도 감소 여부에 대한 문의도 많았다. 사무직의 경우 업무량을 측정할 객관적 지표가 있느냐는 것이다. 국내 종합 경영컨설팅사인 이언컨설팅의 전명환 대표는 “HR부문에서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 앞서 직무가치평가를 사전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으로 사내 다양한 직무에 대한 계량화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무별 난이도·중요도·직무전문성 등을 수치화 혹은 등급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임금피크제 적용 전후 근로자의 업무량·강도 감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단, 수치화 과정에 많은 근로자가 참여해 동의를 얻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과 근로자들의 임금피크제 관련 문의 사항을 질의응답 방식으로 정리했다.
▷소송은 각자 진행해야 하나.
“혼자 소속 회사를 상대로 하는 게 기본이지만, 비슷한 소송 요건을 갖춘 근로자들이 변호사를 선임해 공동소송을 할 수도 있다. 노동조합이 직원을 대표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노조 대표 집단소송은 재판 결과를 임금피크제 적용 근로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노사 간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부분을 ‘미지급 임금’으로 보고 임금 체불로 노동청에 고소할 수 있나.
“회사 임금피크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근로자가 사측에 임금 보전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면 노동청에 진정·고소할 가능성도 있다. 노동청에서 실제로 해당 기업에 문제가 있다고 볼 경우 조사할 수도 있다. 회사 대표 등을 조사한 뒤 기소의견(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긴다면 회사는 형사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사안에 따라 다르다.”
▷노동청 진정·고소와 법원 소송 제기는 무엇이 다른가.
“임금 체불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미지급 임금 청구 소송은 민사소송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민사와 형사소송이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다.”
▷10년 전 임금피크제로 퇴직했는데 못 받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나.
“민법상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다. 하지만 ‘고령자고용법’ 위반에 따른 불법행위가 인정될 경우 손해배상의 소멸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난다. 법원이 어떤 소멸시효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임금피크제 적용 후 업무량·강도 감소를 객관적으로 비교 측정할 수 있는가.
“회사 내 직무가치평가를 통해 직무별 난이도·중요도·직무전문성 등을 점수나 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통해 업무량과 강도 변화를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 후 보직이 변경됐다면 업무량·강도 감소를 어떻게 알 수 있나.
“앞서 말한 직무가치평가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또 업무량 감소와 임금 감소가 비례적인 관계인지 따져봐야 한다. 변경된 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직원들이 가진 업무량과 업무시간·임금 등을 비교하는 방법도 있다. 다른 회사의 동종 직종에 근무하는 직원과도 비교할 수 있다.”
▷기업 인수합병(M&A) 시 임금피크제 리스크도 고려해야 하는가.
“인수 대상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이라면 제도 운용이 대법원 판례에 비춰 봤을 때 얼마나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인수 후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은 전·현직 근로자들이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최진석/김진성/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