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에게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권좌에 올랐을 때 모두 반쪽 지도자였다. 옥새는 물려받았지만, 세종은 병권을 잡고 군림하던 상왕 태종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아야만 했다. 대선에서 승리는 했지만,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은 ‘검수완박’ 법안 강행 처리 등에서 보듯이 입법권을 거칠게 휘두르고 있다.
세종은 슬기롭게 반쪽의 권력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성군이 됐다. 윤 대통령은 세종에게서 반쪽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세종은 상왕과의 소모적 충돌을 피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반쪽의 권력을 잘 활용한 법치로 국가 기강을 바로잡았다.
젊은 왕이 등극한 후 태종 때 태평성대를 누리던 지방 수령들의 곤장 맞는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직분을 게을리해 백성을 굶기는 관리를 엄격히 질책한 것이다. “관리가 편하면 백성이 고달프고, 관리가 고달파야 백성이 편하다.” 이 같은 세종의 법치는 위민(爲民)정책, 즉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지난 정권에서 너무 법치가 무너지고 국가 기강이 해이해졌다. 정치권력이 검찰수사를 겁박하고, 소신 있는 관료를 적폐로 몰아 침묵시켜 결국 잘못된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와 법치 위에 군림했다.
윤 후보를 찍은 많은 국민의 바람은 5년간 누적된 비정상을 국민을 위한 정상으로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우선 정치인까지 포함된 성역 없는 준법(準法) 감시 기능을 확립해야 한다.
명재상 황희가 처음부터 흠집 없는 청백리는 아니었다고 한다. 평복 야행으로 황희의 집 마당까지 들어갈 정도로 철저히 감시하는 세종에 의해 청백리로 만들어 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진영논리에 얽매여 핵심 집권 세력에 대한 준법 감시를 철저히 하지 않고 법치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세종은 상왕이 있을 때 섣불리 개혁의 칼을 뽑지 않았다. 집현전에 유능한 인재를 발탁해 개혁 기반만 마련했다. 개혁은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개혁 의지만 앞세워 섣불리 서두르다간 중종 때 조광조처럼 기득 세력의 역공으로 실패하기 쉽다.
대통령은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정파를 초월한 협치를 부탁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교훈을 보면 야당이 다수당일 때 협치로 국가 개혁을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쪽의 권력을 가진 2년간 협치와 법치라는 쌍두마차를 절묘하게 몰아 개혁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대통령은 협치로 통합의 정치를 하지만, 준법기관은 성역 없는 법치로 국민이 갈망하는 사회정의를 바로 잡아야 한다. 모든 개혁에는 정치적 반발이 따른다. 훈민정음 창제에도 최만리가 반대 상소를 여러 번 올렸다. 하지만 세종은 그런 신하를 벌하지 않고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든다’고 인내심 있게 설득했다.
새 정부의 3대 개혁 추진에도 기득권을 침해받는 노동·교육계, 그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뒤흔든다고 생각한 거대 야당이 엄청난 정치적 반발을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을 선과 악의 대립구조로 보면 백전백패한다. 지난 정권은 굴러들어 온 권력을 겸손히 행사하지 않고, 정의로운 촛불혁명 세력 대 적폐 세력이라는 대립 구도로 적폐 청산을 몰아붙이다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새 정부는 소통하며 개혁의 당위성을 끈기 있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친노조적인 노동법규,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는 교육 시스템, 그리고 얼마 후면 바닥이 드러날 연금제도의 문제점을 국민들이 절박하게 실감하도록 해야 한다.
이틀 뒤면 지방선거다. 0.7%포인트 차이로 대권을 내준 민주당은 일면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방선거 결과는 그들이 진짜 억울하게 대선에서 패했는지 아니면 민심이 정말 등을 돌렸는지를 말해 줄 것이다.
만약 후자이면 2024년 봄 총선에서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입법권을 장악하게 되고 반쪽의 권력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윤석열 대통령 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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