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作 ‘브로커’, 가족이라는 단어 대신 하고 싶은 말은

입력 2022-05-31 21:58  

[박찬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영화 ‘브로커’가 6월 8일 개봉한다.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언론시사회가 31일 오후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고레에다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이주영이 참석했다.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의 첫 한국 영화 진출작이자,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만큼 식전부터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이들, 그리고 크고 작은 상처들을 감싼 채 뜻밖의 여정을 떠난다는 내용은 그 설정만으로 사회적이면서도 가족적인 양상을 띈다.

‘걸어도 걸어도(200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 ‘어느 가족(2018)’ 등 평소 ‘가족’이란 보편적 요소를 작품의 구심적 소재로 꼽았던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쟁점에 눈을 집중한듯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시사회 직후 이어진 간담회에서 영화를 만들며 고심하고 목표했던 부분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내가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에 배우들은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촬영 시작 전 손 편지로 마음을 전하고, 주연 송강호에게 언어적인 디렉팅을 자문하는 등 소통하고자 노력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즐거운 추억만 남아있을 정도로 촬영은 정말 순조롭게 마무리됐다”라며 “CG를 최소화한 만큼 자동차로 운전하는 상황도 실제였고, KTX에 탑승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실제 상황이었다”라고 답했다. 작중 열차가 터널을 지날 때, 그 미묘한 감정을 전하는 것에 있어 이지은과 송강호의 대화를 맞추는데 힘들었다고.

고레에다는 “일본과 한국 상관없이 베이비 박스는 아이를 생명에서 구해내고 어머니를 사회적 고립으로 구출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라며 “과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작품 취재를 할 당시 한국의 베이비 박스에 대해 처음 들었다. 광범위한 조사 결과, 한국은 일본보다 통계적으로 10배의 아기 수가 맡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답했다.


처음 이 영화에 대해 구상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건 송강호의 얼굴이었다고. “송강호가 베이비 박스에서 아기를 안고 굉장히 자상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누군가에게 팔아버리는, 그런 선악이 혼재되어 있는 씬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진 채 자라는 이들을 볼 때, 그 책임이 과연 어머니한테만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라며 “평소의 난 직설적인 메시지의 대사를 잘 쓰지 않는 편인데, 소영(이지은)이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 의미를 더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인 배우들과 함께한 소감에 대해서는 “국적을 나눠서 중요성을 찾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한국인 배우들이 많았고,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이 영화가 실현됐다는 것에 큰 가치를 느꼈다”라고 주관을 밝혔다.

또한 “이 작품에는 여러 가지의 박스가 등장한다. 첫 번째 아기가 들어 있는 베이비 박스, 그리고 브로커가 타는 차량인 봉고차 또한 박스며, 서로 간의 경계선이 허물어진 그들의 관계와 사회 또한 하나의 박스로 생각했다. 한 생명을 구축하던, 조그만 베이비 박스가 시간이 지나며 확장되어 간다는 의미를 담아내고 싶었다”

한편 그는 ‘75회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배우가 칭찬을 받고 수상하게 된다면 마음껏 그 기분을 누리게 된다. 이번에도 그래서 가장 기뻤다. 일본의 언론 관계자들도 ‘평소보다 즐거워 보인다’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다”라며 “내가 무언가를 했다기보다는, 송강호가 그동안 이뤄왔던 것들을 끝내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봉준호나 이창동,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배우”라고 그 마음을 전했다.

송강호는 이에 “칸은 워낙 적은 상을 주기 때문에 확률이 낮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기다리며 긴장하다가, 전달받은 직후부터는 마음이 편안해졌다”라며 “수상 시점에서 패닉이 되는 아주 묘한 감정이 들었고, 기쁘다는 감정에 앞서 ‘이게 꿈인가 생기인가’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라고 답했다. 가장 먼저 김지운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축하 메시지를 확인했다고. “그 이후로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고, 너무 과찬을 받게 돼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런 감동을 천천히, 야금야금 느끼고 싶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는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에 선입견이 있었다.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모든 걸 끝낼 거라는 그런 느낌. 하지만 ‘브로커’는 역설적이고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그려낸 듯 했다. 작중 초반부 아기를 잔혹하게 버릴 때 따스한 대화가 남아 있지만, 서로의 접점이 커질 때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마주한다. 어찌 보면 생명을 다루고 있지만, 가슴 속이 그것을 깊이 받아낼 수 있도록 잘 설계하지 않았나 싶다. 일본과 한국을 떠나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2010년 개봉한 ‘의형제’ 이후 작중 처음으로 접한 강동원과 송강호. 송강호는 강동원에 대해 “막내 같은 친숙함과 풋풋하고 인간적인 면이 있는 친구”라며 “배우로서도 늘 노력하고 집중하려는 모습이 돋보이는,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젠 말없이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그런 경지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라고 그 애틋함을 표했다.

이어 강동원 또한 “평소에도 가끔 인사드리긴 하지만 한 작품으로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가웠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돼 행복한 감정이었다”라고 긍정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극 중 브로커인 ‘동수’ 역할을 맡은 강동원은 촬영 전 보육원 관계자들과 만나 캐릭터 연구에 열중했다고.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보육원에서 자란 동수는 ‘아이란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라는 신념을 곧게 갖고 있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영’이라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는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지은은 작중 모든 걸 내려놓았다가 다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소영’에게 “남들보다 늦긴 했지만 용기있게, 다시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라고 담담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모두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고백하는 장면에 대해서는 “처음 시놉시스를 읽고 그 부분에 슬픈 감정을 느꼈지만, 촬영이 순서대로 진행된 이후엔 ‘이걸 굳이 슬픈 감정만을 갖고 말해야 하나’라고 느끼게 되더라. 그걸 깨닫고 나선 조금 담담하게 소리 내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정의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자, 브로커들과 미혼모의 여정을 관조한 ‘이 형사’ 역의 이주영 배우도 마이크를 잡았다. 캐릭터에 임한 소감으로 이주영은 “‘이 형사’와 ‘수진(배두나)’은 얼핏 같은 모습으로 브로커들을 뒤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또 다른 대립이 존재한다”라며 “‘이 형사’는 미혼모를 사회적, 제도적으로 보호하는데 열망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하기도.


한편 ‘브로커’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점차 가족이 되는 모습을 그렸다는 부분에서 관객의 호불호를 부를 전망이다. 자칫 작위적이고 신파적인 요소를 내세울 수 있다는 의견. 일본인 감독이 각본을 쓴 만큼, 긴 문어체 대사가 한국적 소통 과정에 자연스레 젖어 들지 않고 이입하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을 정도다.

끝으로 고레에다 감독은 “생명을 다뤘다는 점에서 ‘브로커’는 보편적인 주제를 시사하고 있다고 느낀다. 취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이러한 문제(베이비 박스나 미혼모 문제)의 엄격한 비판의 화살은 줄곧 어머니로 향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둘러싼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이고, 진정한 책임은 과연 어디에 있을지 깊이 다뤄보고 싶었다”라고 담담하게 그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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