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김동춘 교수 "시험능력주의는 이 시대의 신흥종교"

입력 2022-05-31 16:13   수정 2022-05-31 16:38

'능력대로 공정하게'. 오늘날 한국 사회에 유령처럼 떠도는 표어다. 그런데 이 능력이란 대체 누가, 어떻게 측정할까. 대표적 진보 사회학자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가 한국식 능력주의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능력이란 곧 '학벌' 또는 '시험 응시 능력'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31일 <시험능력주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시험능력주의 뒷면에 있는 청년과 아이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며 "이를 방치하는 건 큰 잘못"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병폐를 '시험능력주의' 한 단어로 진단했다. 명문대·고시 출신만이 한국의 엘리트층이 되고, 수치화된 시험으로 사람을 선별·배제하는 것만을 공정으로 여긴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대학 입시에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고, 소수의 입시 경쟁 승자 외 나머지 학생들을 차별한다. 또 실무 역량과 동떨어진 대입 점수로 채용이 이뤄진다고 봤다.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시험능력주의의 원인이자 결과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한 세대를 지난 지금 한국은 '시험선수' 엘리트들이 권력과 부를 차지하고, 그 자녀도 좋은 학교 보내서 지위까지 세습하는 나라가 됐다. 능력주의는 이 시대의 신흥종교가 됐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도덕적 표준까지 됐다." <시험능력주의> 서문의 일부다.

시험능력주의의 근본 원인과 대안은 교육 밖에서 찾았다. 김 교수는 "수도권 집중 현상, 대학 서열화,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과 대우 등을 해결하지 않고서 '사교육 그만두자'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자' 얘기해봤자 소용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수도권 집중 해소나 직업교육 강화는 이념과 상관 없이 머리를 맞대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거제 고졸 기술인력이 모자라 조선소가 수주를 해도 일할 사람이 없는 구조"라며 "산업이나 경제도 고꾸라뜨릴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유독 시험능력주의가 팽배한 원인으로는 외환위기 이후 커진 고용불안을 꼽았다. 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최상위권 학생이 의과대학,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쏠리는 국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상당히 어둡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 사회의 교육은 '노동자 안 되기'의 전쟁"이라며 "이때의 노동자란 임금노동자도 포함하는데, 외환위기 이후 쉽게 잘리지 않는, 전문직 선호 현상이 심해졌다"고 덧붙였다.

정부 등 공적 영역에서는 시험능력주의와 이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켰다고 봤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에 크게 실망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 진보 사회학자로, 문재인 정부의 '비판적 지지자'로 통한다.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는 결국 좋은 지위를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문 정부는 이런 측면을 무시하고 교육을 입시 문제로 바꿔버렸습니다."

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촉발된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김 교수는 "정부가 대의(大意)만 생각하고 정교하지 않은 정책을 수립했다"고 지적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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