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31일 15:3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유통'은 상품을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말한다. 상품이 전달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독특한 산업이 되기 시작한 곳은 19세기 프랑스 파리다. 1853년 파리 시장이 된 오스만 남작은 거대 도시 파리를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창조했다. '산책이 가능한' 도시가 된 파리는 쇼윈도를 갖춘 상점과 거대 백화점이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냈다. 특히 파리의 쁘렝땅 백화점은 당시 급성장하던 프랑스 중산층을 대상으로 산업혁명 이후 공급되기 시작한 각종 공산품들을 구매하는 행위를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인식되게 함으로써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이후 유통업은 제조업과 함께 20세기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주요 산업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탄생한 유통업은 지금까지 크게 세 번의 거대 충격을 경험했다. 첫 번째 충격은 1980~1990년대 월마트 등이 주도한 신유통 혁명이다. 그 이전까지 자영업 비중이 높았던 소매 유통 영역에 진출한 거대 기업들은 대량구매, 전 지구적 규모의 물류 인프라 구축 및 자체 브랜드 상품 공급 전략 등을 기반으로 전통 유통업의 지형을 근본부터 바꿔버렸다.
두 번째 충격은 1990년대 후반 등장한 이커머스(전자상거래)다. 1990년대 후반 급속히 확산된 인터넷 통신기술을 토대로 성장한 이커머스는 2010년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성장의 변곡점을 지났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4200조원에 달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커머스는 현재 글로벌 리테일 시장의 16% 수준으로 커졌는데 특히 중국은 지난해 이커머스의 비중이 전체 유통업 비중의 절반을 넘어섰다. 기존 소매 유통업의 발전으로 1인당 오프라인 매장의 규모가 전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은 기존 오프라인 매장 규모가 워낙 커 아마존같은 거대 이커머스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이커머스 비중이 10% 후반대에 그치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1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유통업이 경험한 세 번째 충격이 바로 Covid-19(코로나19) 글로벌 펜데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미국 유통업의 상징이었던 니먼마커스, JC페니, 브룩스 브로더스 등 주요 대형 유통기업들의 파산과 주요 도심 매장 폐쇄는 미국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 유통 산업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주요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이 파산하는 와중에 코로나19는 기존에는 이커머스로 판매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의류, 신선식품, 자동차부품, 귀금속 등 럭셔리 브랜드 소비재 등의 온라인화를 가속화시켰다.
코로나19는 주요 카테고리의 온라인화를 가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고객 경험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일부 주요 브랜드의 직접 판매 비중을 급속하게 성장시키기도 했다. 1966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해변 도시 산타모니카에 첫 번째 조깅용 운동화 매장을 열었던 나이키의 매장 운영자 제프 존슨은 당시 주요 고객들의 신발 사이즈를 카드로 기록하고, 주요 고객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축하 카드를 보내는 등 고객 밀첩 관리를 통해 운동화 사업을 확장했다. 스마트폰의 전방위적 확산으로 광범위하게 수집 분석 가능한 고객 데이터와 실시간으로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기반으로 나이키는 다시 한번 1960년대 사업 초기에나 가능했던 친밀한 고객 소통을 할 수 있게 됐고, 나이키는 2021년에 전체 판매액의 40%를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게 됐다.
코로나19 글로벌 펜데믹 이후 소비자들은 다시 오프라인 매장을 찾을 것이다. 수렵·채집 동물에서 진화한 인간은 결코 산책 본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펜데믹이 만들어낸 온라인 구매 경험의 광범위한 확산으로 인해 램프 밖으로 나온 지니는 다시 램프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고, AR/VR/스마트 센서와 메타버스가 창조할 가상현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지난 십여 년간 유통기업들이 주창해온 옴니 고객경험이 이제서야 진정한 개화기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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