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5조원 마통' 쓰는 정부…이자는 얼마나 될까 [조미현의 BOK 워치]

입력 2022-05-31 17:14   수정 2022-05-31 17:43


정부가 한국은행으로부터 5조원 규모 일시 차입금을 조달했습니다. 국회를 통과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포함된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등을 지급하기 위해서인데요. 당장 쓸 수 있는 예산이 없어 세금이 걷히기 전 일시적으로 한은으로부터 빌려 쓰는 것입니다.

한은 차입금은 정부의 '마이너스 통장'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 한은법 제75조는 '대정부 여신'(정부 대출)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고금관리법 제32조 역시 국가가 출납 상 필요할 때에는 재정증권의 발행, 한국은행으로부터의 일시차입,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정부는 세금을 거둬 나라를 운영하는데 코로나19와 같은 예측이 어려운 재난 상황이 생기면 대규모 재정 투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당장 세수가 충분하지 않을 때 재정증권을 발행하거나 한은에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한은에서 무제한으로 차입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 재정 활동에 발권력이 남용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차입 한도는 국회에서 예산 의결로 정합니다. 올해는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일시차입 또는 재정증권을 발행할 수 있는 최고한도액은 일반회계 40조원을 포함 총 50조2000억원입니다.


한은이 정부에 대출할 때 이자율은 얼마나 될까요?

대출이 실행되기 '직전 분기 마지막 월 중 91일 물 통화안정증권 일평균 유통수익률+0.1%포인트'라고 합니다. 이에 따라 이번 5조원의 차입금에 대한 이자율은 '연 1.316%'로 정해졌습니다. 대략 하루 1억8000만원의 이자를 내야 하는 셈입니다. 정부는 한은에 6월 초께 차입금을 상환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앙은행의 정부 대출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통화량이 늘어나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차입금 증가는 통화 발행을 늘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경우 이런 이유로 유럽연합(EU) 회원국 정부에 대출을 하지 않습니다.

또 정부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지난 대선 기간 정치권에서는 경기 부양을 위해 한은 발권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정부 예상과 달리 세입이 없을 경우 유동성 부족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2004년 한은에 일반회계상 1조원 규모 차입금을 상환해야 했지만, 세입 부족으로 만기 연장을 요청한 일이 있습니다. 한은은 만기 연장을 거부했고, 정부는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습니다. 결국 일반회계가 아닌 한도가 남아있는 양곡관리특별회계를 통해 한은으로부터 추가 차입을 받아 '돌려막기' 상환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차입을 선호하는 이유는 자금 조달이 쉽고 시장 금리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여러 차례 추경을 편성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은 차입금은 동원됐습니다. 지난해에만 총 7조5000억원 규모 차입이 이뤄졌고, 평균 4일 만에 상환됐다고 합니다.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은으로부터의 차입은 엄격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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