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기요틴'에서 '신발 속 돌멩이'까지

입력 2022-05-31 17:36   수정 2022-06-01 00:07

규제개혁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된 것은 1998년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기요틴(단두대)처럼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슬 퍼런 ‘기요틴’의 칼날은 곧 녹이 슬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규제 덩어리’를 통째로 없애겠다며 규제총량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구호만 요란했을 뿐 소득이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규제개혁 상징어는 ‘전봇대 뽑기’였다. 목포 대불공단 기업들이 “커브길 옆 전봇대 때문에 대형 트레일러 운행이 어렵다”며 제기한 민원을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묵살한 사례에서 따온 용어였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손톱 밑 가시 제거’, 문재인 대통령의 ‘규제 샌드박스’ 등 온갖 구호가 난무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규제개혁 순위에서 한국은 38개국 중 33위에 머물고 있다. 이해관계자의 반발과 이를 의식한 정치권·공무원 때문에 규제가 줄지 않고 오히려 느는 추세다. 문 정부 때도 632건의 규제 샌드박스를 승인했지만 제도 개선이 이뤄진 것은 고작 20%인 129건뿐이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은 뿌리 깊은 규제 사슬을 ‘철의 삼각형’에 빗댔다. 이익단체가 규제를 청탁하면 관료는 ‘완장’을 차기 위해 이를 설계하고 정치인은 예산을 챙기며 입법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문 정부 들어 공무원이 10만 명 이상 늘었고, 기업 규제는 2017년 1094건에서 2020년 1510건으로 40%나 증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규제를 ‘모래주머니’와 ‘신발 속 돌멩이’에 비유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규제 혁파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역대 정부처럼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미국처럼 규제 하나를 만들 때 낡은 규제 두 개를 없애는 방식(‘1 in 2 out’)을 활용해 보자. 안 되는 것 빼고 다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도 도입하자.

기관장의 규제 혁파 의지를 북돋울 수 있도록 평가에 가중치를 주고, 현장 공무원들에겐 발탁 승진, 포상 성과급 등 혜택을 주자. 의원 입법에도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규제영향평가제를 적용할 때가 됐다. 규제 혁파는 돈 안 들이면서 경기 침체를 막고 성장을 이끄는 좋은 수단이다. 아무도 못한 청와대 이전을 과감하게 해낸 대통령답게 규제 혁파도 빠르고 화끈하게 해내길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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