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즘 국내 미술시장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주식으로 치면 ‘동전주’나 ‘지폐주’ 정도였던 작가들의 작품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반면 거장들의 작품 중 상당수가 살 사람을 못 찾아 경매 출품이 취소되거나 유찰되고 있다. 중저가 작품 가격은 ‘신흥 부자’가 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의 탄탄한 수요에 힘입어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고가 작품은 자산가치 하락으로 ‘큰손’들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 올 들어 이런 작품들이 줄줄이 ‘굴욕’을 당하고 있다. 케이옥션 경매에 나오기로 했던 김환기의 ‘항아리’(2월·추정가 12억~20억원), 이중섭의 ‘닭과 가족’(3월·시작가 14억원) 등 ‘국가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서울옥션 경매에 나올 예정이었던 파블로 피카소의 정물화(4월·25억~35억원), 아트부산에 출품될 예정이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Purple Range’(5월·70억원) 등이 행사 직전 출품이 취소됐다. 국내 미술시장의 ‘대장주’인 이우환과 박서보 작품도 최근 수차례 유찰됐다.
미술계가 설명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자산시장 불황으로 큰손들의 돈줄이 마른 데다 ②그림 값이 그동안 너무 많이 올랐고 ③‘부르는 게 값’인 작품은 더 이상 시장에 나오지 않는 게 겹친 탓이란 설명이다. 황달성 화랑협회장은 “인기 있는 작품들은 지난해 호황 때 경매에 많이 나와 손바뀜을 했다”며 “시장에 새로 나올 만한 매력적인 물건이 많지 않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시장을 떠받치는 건 신진·중견 작가들이다. 지난 27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우국원의 ‘케세라세라’(3억원)와 심문섭의 ‘제시’(1억6000만원)가 나란히 기존 최고가를 깨는 등 몸값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두 작가 모두 2년 전만 해도 평균 작품 가격이 수천만원대였다. 미술계 관계자는 “상당수 MZ 컬렉터들은 수십억원짜리 작품에 대해 ‘너무 비싼 데다 재판매도 쉽지 않다’고 생각해 수천만~1억원대 작품을 긁어모으고 있다”고 했다.
센터는 “미술시장도 최근의 실물경제 및 자산시장 침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한다. 센터는 “중국 정부가 억만장자들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악재”라며 “중국 수요 감소로 명품시장이 쪼그라든 일이 미술시장에서 재연될 수 있다”고 했다.
정준모 센터 대표는 “1분기 세계 경매시장에서 팔린 그림의 48%(5억5000만달러)는 인상주의와 근대미술 등 불황기에도 현대미술에 비해 하락폭이 작은 ‘안전자산’이었다”며 “국내 컬렉터들도 수익성에서 안정성으로 투자 방향을 돌려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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