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책은 문자가 사는 집…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입력 2022-06-01 15:00   수정 2022-06-01 18:35

코로나19 팬데믹 2년간 소설가 김영하는 매일 아침 일기를 썼다. "몇월 며칠, 국내 코로나19 감염자 O명, 사망자 O명." 수십명에서 시작한 일기는 수십만명까지 늘었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바이러스를 피해 사람들은 집에 틀어박혔다. 외식문화 활성화로 집에서 주방이 없어질 거라느니, 공유주택이 인기라느니 하는 말은 쥐구멍으로 사라졌다. 각자의 집에서 사람들은 뭘 했을까. 놀랍게도 책을 읽었다. 소설가는 생각했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우리 몸은 집으로 퇴각하고, 우리의 정신은 책으로 도피한 것일까?'

1일 소설가 김영하 작가는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우리의 예상과 달리 책이라는 매체는 팬데믹 와중에 굳건하게 살아남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작가는 '책은 건축물이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책을 사랑하는 인구가 줄지 않았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2020년, 2021년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고 했다. 통계로도 확인 가능하다. 지난해 온·오프라인 서점 3사의 매출 합계는 1조8976억원으로 전년 대비 9.3% 늘었다. 상위 72개 출판 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6.1% 증가했다.

왜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사람들은 책에 사로잡혔을까. 골방에 틀어박혀 자기의 고독과 불안을 달래느라 책을 읽었을까. 김 작가는 거꾸로 설명한다. 그는 "책을 읽는 행위는 저자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저자와 끊임 없이 대화하는 일"이라며 "실제 인간을 만날 수 없으니 책으로 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정보와 이야기를 동시에 전달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팬데믹 와중에 카뮈의 <페스트>가 갑자기 다시 주목 받았습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다시 꺼내 읽으신 분들도 있죠. 의학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정체불명의 질병이 퍼지는 상황에서, 나 말고 다른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알고 싶은 것이었죠."

김 작가는 "책을 읽는다는 건 도피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준비이기도 하다"며 "사람들이 다음날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책은 집이다. 집은 누군가 지어야 한다. 저자뿐 아니라 편집자, 디자이너, 인쇄소 기술자 등 무수한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 책은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읽혔을 때 책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나 책과 건축물 간 차이점도 있다. 김 작가는 "책은 건축물과 달리 입구와 출구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다. 처음부터 읽거나 중간부터 읽어도, 띄엄띄엄 읽어도 상관 없다. 또 그는 "건축물은 보통 주문자를 위해 만들어지지만, 책은 생산자가 기획하고 사용은 불특정 다수가 한다"며 "오늘날 거의 모든 책은 특정 권력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위해 쓰여진다"고 말했다. 수용 인원에 제한이 있는 건축물과 달리 책은 한 권도 수만명이 읽을 수 있다. "책의 특성은 보편성에 있습니다. 책이 민주주의의 친구,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이유입니다."

소설가의 결론은 이 단단하고 견고한 '문자의 집'에 과감하게 뛰어들어보라는 초대다. "도서전에서 책을 집어들었을 때, 그 물성을 음미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견고하고 단단합니다. 문자가 사는 집 같죠. 회의할 때 나눠주는 유인물과는 다릅니다. 그런 종이들은 어딘가 굴러다니다가 어느새 사라지죠. 그러나 책은 놀라울 정도로 오래 살아남습니다."

김 작가의 강연에는 관람객 약 200명이 몰렸다. 출협은 김 작가의 강연을 위해 130석 넘는 좌석을 마련했지만 수십명이 강연장 밖에서 1시간 넘게 서서 강연을 들었다. 김 작가는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당초 앉아서 강연하려던 계획을 바꿔 강연시간 내내 서서 진행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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