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20~30대 젊은 층의 금주율이 높았다. ‘소버 큐리어스’라는 가치관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소버 큐리어스는 ‘술 취하지 않은’을 뜻하는 ‘소버(sober)’와 ‘호기심이 강한’을 뜻하는 ‘큐리어스(curious)’를 합친 말이다. 이전 세대가 술 한 잔에 시름을 잊었다면 요즘 세대는 ‘취하지 않는 것이 멋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술을 안 마시는 일본인이 늘어나면서 떨고 있는 곳이 주류회사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부진이 단기적인 위기라면 음주 인구 감소는 주류회사의 생존을 좌우할 위험 요소다. 위기의 주류회사가 마련한 생존 전략은 ‘술 안 마시는 일본인 나머지 절반을 술 마시게 하는 것’이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기존 주류시장의 2배가 넘는 규모의 거대시장을 새로 개척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일본 주류회사들이 내놓은 제품이 ‘미(微)알코올 맥주’다. 알코올도수가 1% 미만인 맥주를 말한다. 아사히가 작년 3월 처음 선보였다. 도수는 0.5%다. ‘맥주스러운’이라는 뜻으로 ‘비어리(Beery)’라는 이름을 붙였다. 350mL 한 캔 가격은 214엔(약 2075원)으로 아사히의 대표 맥주인 슈퍼드라이(228엔)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사히는 독자적인 제조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알코올도수가 훨씬 낮은데도 가격이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알코올도수가 0.5%로 떨어질 때까지 물로 희석하는 방식이 아니라 양조한 맥주에서 알코올만 제거하는 기술을 썼다. 아사히 관계자는 “그 덕분에 맥아의 감칠맛과 깊이를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년 하반기에는 미알코올 하이볼(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은 주류)인 ‘하이볼리’와 미알코올 스파클링 와인인 ‘비스파’를 추가했다. 마쓰야마 가즈오 아사히 전무는 “지금까지는 술을 마시는 고객만 바라봤지만 이제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는 4000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을 새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9월에는 일본 4위 맥주회사인 삿포로가 미알코올 맥주 시장에 가세했다. 삿포로는 제품명을 ‘생맥주스러운’이라는 뜻의 ‘드래프티(Drafty)’로 지었다. 도수는 0.7%로 아사히 비어리보다 0.2%포인트 더 높였다. 일본 주류업계가 2021년을 ‘미알코올 맥주 원년’으로 부르는 이유다.
세계 3위 맥주회사인 아사히의 주류 매출에서 미알코올·무알코올 음료 비중은 7%로 늘었다. 아사히는 2025년까지 미알코올·무알코올 음료 매출 비중을 20%로, 현재의 3배 가까이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산토리 역시 2008년 100만 상자였던 미알코올·무알코올 음료 매출이 2021년 2500만 상자로 25배 늘었다고 발표했다.
미알코올 주류의 선전은 의외로 다양한 소비자층 덕분이라고 주류회사들은 설명했다. 회식 자리에서 한 병 더 마시고 싶지만 다음날을 생각해서 주저하는 소비자에게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술을 즐기진 않지만 칵테일을 한잔하면서 바의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다’는 젊은 여성도 많다. 술자리 분위기는 좋아하지만 체질적으로 알코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비자도 고객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 무알코올 맥주가 처음 판매된 것은 42년 전인 1980년이다. 지금까지 무알코올 맥주는 운전 임신 등의 이유로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실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음료였다. 최근에는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 적극적으로 찾아 마시는 음료가 됐다는 분석이다.
2020년 출판된 베스트셀러 《게코노믹스, 거대시장을 개척하라》는 술 못 마시는 일본인을 타깃으로 하는 음료시장의 잠재력을 부각했다. ‘게코’는 일본어로 술 못 마시는 사람을 뜻한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이 술을 거절할 때 이 단어를 쓴다.
유명 작가이자 투자자인 저자 후지노 히데토는 “게코들의 수요에 대응하는 것으로만 3000억엔(약 3조원) 이상의 거대시장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주류회사들이 최근 미알코올·무알코올 주류 시장에 힘을 쏟는 것도 ‘게코노믹스’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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