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관측은 날씨가 도와줘야 하기에 관측일을 정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날이 맑으면 그냥 별 보러 나서야 한다. 그런데 그날이 그믐달이 뜨는 날과 맞아떨어지면 행운이라 여기고 더더욱 놓치면 안 된다. 실제로 하루 다음날은 달이 30분가량 더 늦게, 금성 아래에 뜨기 때문에 해뜨기 전 다소 밝은 여명이 더해져 훨씬 멋진 모습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옅은 구름으로 운이 닿지 않았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문득 고개를 드니 벌써 전갈자리의 머리 부분이 남쪽 하늘 위로 쑥 올라와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치여서 다시 한번 살펴보니 진짜 전갈자리였다. 그런데 전갈자리가 높게 떴으면 반드시 보여야 할 은하수가 전혀 안 보였다. 아마도 대기가 깨끗해 눈 아래 도시 불빛이 너무 밝아서 그런 것 같았다. 옅은 연무가 낮게 깔린 날이 깨끗한 날보다 은하수가 오히려 더 잘 보인다. 연무가 하늘로 올라가는 도시 불빛을 막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의 가로등에 충분히 큰 갓을 씌워 하늘로 올라가는 빛을 차단해 주면 밤하늘의 별을 보는 데 연무가 하는 역할 이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정이 지나니 비로소 은하수가 잘 보였다. 고도가 더 높아졌고, 도시의 불빛이 많이 가라앉은 덕분일 것이다. 견우와 직녀를 포함한 여름철 대삼각형이 머리 위로 높게 올라왔다. 이 시점이면 전갈자리는 천문대에서 바라볼 때 영천 시내의 밝은 불빛 위에 자리한다. 그러면 은하수는 전갈자리를 오른쪽에 끼고 영천 시내에서 곧게 뻗어 올라 머리 위를 지나 북쪽까지 길게 이어진다. 보통 은하수 하면 여름의 화려한 모습만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둥글게 하늘을 둘러싸고 있다. 여름에는 은하의 중심부가 보여서 화려하고, 겨울에는 반대쪽 희미한 부분이 보여서 은하수가 없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우리 은하의 바깥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심부를 볼 때와 반대쪽을 볼 때를 상상해 보면 된다.
과거엔 행성이 모두 한쪽에 뜨면 지구에 미치는 중력 변화로 큰 재앙이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하지만 지구에 미치는 중력 변화가 극히 미미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실제로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전혀 들을 수 없다. 뉴스는 관심을 끌어야 하기에 때때로 천문 현상에 과장이 더해지기도 한다. 대부분 심각하게 대할 필요는 없고, 우리는 보기 드문 멋진 천문 현상을 즐기면 된다. 모든 행성이 일렬로 나란히 뜨고, 다시 그믐달과 만나는 한 달 후가 또 기대된다. 그사이에 서로 위치를 바꾸며 움직이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날씨만 허용하면 이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고 싶다. 하지만 장마철이라 하늘이 허용해야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영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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