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는 이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BOK(한국은행) 국제 콘퍼런스’ 개회사에서 “저물가·저성장 국면에 대비한 신흥국만의 효과적인 비전통적 정책 수단은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찾기 쉽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BOK 국제 콘퍼런스는 한은 주최로 2005년부터 국내외 전문가들이 경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리는 행사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이후 2년 만에 다시 열렸다.
이 총재는 선진국이 아닌 신흥국에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 흐름이 나타날 경우 완화적 통화정책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 총재는 “일부 신흥국 국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그간 터부시돼 온 국채 직접 인수까지 나섰다”며 “그럼에도 심각한 환율 절하나 자본 유출이 초래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신흥국의 자산 매입 등 비전통적 정책이 글로벌 공통 충격에 대한 전 세계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향후 개별 신흥국이 구조적 저성장 위험에 직면해 홀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펼칠 경우에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지난 3월 뉴욕시립대 응용경제학 세미나에서 장기 침체를 막기 위해 ‘무책임할 정도로 확실하게’ 완화적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한 것을 신흥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날 기조연설에 나선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은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은 1970년대보다 광범위하지만, 유가 상승 충격은 비교적 제한적이고 인플레이션 압력도 아직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다”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난 1970년대와 달리 전 세계 원유 의존도가 50%에서 30%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신 국장은 “공급 충격에 따라 유가가 10% 상승하면 주요 선진국의 국내총생산(GDP)은 8분기 시차를 두고 약 0.5%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런 부정적 영향 때문에 물가 상승세가 중기적으로는 꺾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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