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열여덟, 열아홉 청춘들이 1~2년 뒤 취업 전선에서도 웃을 수 있을까. 높은 취업 문턱 앞에서 혹여 절망하지는 않을까.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같은 직업계고는 전국에 570여 개가 있다. 한 학년에 8만여 명이다. 졸업 후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17년 50%를 웃돌던 직업계고 취업률은 지난해 28%로 떨어졌다.
과거 공고, 상고로 불리던 직업계고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받고 빨리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경로였다. 은행은 상고 출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살아 있는 고졸 신화다. 학력보다 능력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능력보다 학력과 스펙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가 확산하면서 고졸의 사회 진출이 힘들어졌다. 취업이 예전 같지 않자 졸업 후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 비율이 2017년 32.5%에서 지난해 45.0%로 높아졌다.
직업계고의 위기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대전환과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한다. 제조업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전통적인 고졸 일자리인 생산직 수요가 줄고 있다. 대규모 공채가 사라지고 취업 시장이 경력직 수시채용으로 재편되며 고졸들의 취업 기회는 더 좁아졌다.
비단 고졸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체 청년 일자리 문제이기도 하다. 청년실업률은 고공행진하는데도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는 ‘일자리 미스매칭’도 심각하다. 고졸 인재를 잘 활용하면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직업계고도 변해야 한다. 산업의 디지털 전환에 발맞춰 낡은 교과 과정을 혁신하는 일이다. 직업계고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인력을 배출하는 통로로 활용하면 일자리 미스매칭과 학력 인플레를 동시에 풀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폐지에만 힘을 쏟았다. 다분히 진영 논리에 치우친 교육평준화를 위해 소모전을 치르는 동안 직업계고 업그레이드는 뒷전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마이스터고를 설립하고 대통령이 직접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을 챙겼다. 공공기관들이 앞장서서 고졸을 뽑았다. 그런데 문 정부 5년간 공공기관 370곳의 절반인 184곳에서 고졸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고 한다. 툭하면 꺼내든 ‘약자 배려’ 정신은 어디 갔는지 모를 일이다.
청년 일자리 지표가 나빠지자 대책으로 내놓은 게 ‘세금 일자리’였다. 예산을 투입해 빈 강의실 불 끄기 같은 2~3개월짜리 단기 알바를 양산해 취업자 수를 부풀렸다. 청년들이 원하는 건 오래 다닐 수 있는 번듯한 일자리다.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는 민간 기업이 창출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기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5년간 기업을 적대시하는 반시장·반기업 정책이 쏟아졌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기업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게 청년을 위한 나라를 만드는 길이며,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직업계고에 대한 정부의 특별한 관심은 두말할 것도 없다. 윤 대통령과 셀카를 찍은 경복비즈니스고의 장선아 양이 취재진에 전한 말이다. “대통령님이 와주셔서 기운이 좀 납니다. 내년에도 꼭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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