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주의 학파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1920년대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으로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통화정책을 지적했습니다. 중앙은행이 인위적으로 통화량 공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준칙에 따라 통화 증가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극심한 경기 변동을 완화하는 길이라고 했죠. 프리드먼이 주장하는 통화정책을 ‘k% rule(k% 준칙)’이라고 합니다. 중앙은행이 경제 상황에 맞춰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을 대외에 공표하고 경제 주체들에게 명확한 신호를 줘 경기 변동성을 줄이자는 것이 핵심이죠. 프리드먼과 같이 준칙에 입각한 통화정책을 주장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테일러 준칙
바로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사진)입니다. 프리드먼이 통화 공급을 매년 일정 비율로 늘리는 것과 달리 이 교수의 주장은 더 복잡한 식을 통해 산출하게 됩니다. 물가 상승률과 국내총생산(GDP) 갭(실질성장률-잠재성장률)을 고려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이를 ‘테일러 준칙’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목표로 한 물가 상승률보다 실제 물가 상승률이 높고, 잠재GDP보다 실제 GDP가 높다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테일러 교수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무분별한 완화적 통화정책을 매우 비판하며 Fed의 적정 기준금리는 5% 수준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재 Fed가 기준금리를 연 0.75~1%로 설정했는데, 테일러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매우 낮은 금리 수준이라고 할 수 있죠. 테일러 교수는 미국 Fed의 통화정책이 결국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경제 불확실성을 더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통화정책의 원칙 논쟁
반면 통화정책에서 재량을 중시하는 이들은 경기침체로 많은 실업자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개입해 이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2008년 금융위기, 코로나19 등으로 극심한 침체가 발생하자 중앙은행은 제로금리, 양적완화 등과 같이 시중에 통화량을 급격히 늘리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이와 달리 준칙주의 관점에서는 단기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개입은 장기적으로 경기변동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물가만 더 끌어올려 경제 주체에 더 큰 피해를 안겨준다고 주장합니다.
재량과 준칙주의 사이에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추구하는 정책목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량주의는 중앙은행의 주요 임무에 물가 안정과 더불어 고용 안정을 추구하죠. 반면 준칙주의는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 목표만 제대로 수행하면 화폐가치가 안정돼 장기적으로 실물경제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주요국의 물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테일러 준칙과 같은 준칙주의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에는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통화정책 운용 원칙에서 준칙 대 재량 논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