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루이비통 등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가 국내에서 레스토랑을 열고 가구 전시회를 선보인다. 체험형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팬심'을 잡고 라이프스타일군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소비자들 반응도 뜨겁다. MZ(밀레니얼+Z) 세대에서 아끼지 않는 소비로 과시하는 '플렉스(Flex)' 문화가 확산하면서 한국이 세계 7위 명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명품 브랜드들은 최근 한국에서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매장과 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팬덤을 구축해 소비자층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가장 대표적인 시도가 구찌와 루이비통의 '레스토랑'이다. 매장 개장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못지 않게 이들 레스토랑의 예약 전쟁도 뜨겁다.
루이비통은 오는 10일까지 팝업 레스토랑 '피에르 상 at 루이비통'을 운영한다. 서울 청담동 소재 루이비통 메종 서울 4층을 브랜드 미학을 담은 레스토랑으로 꾸몄다. 파리에서 5곳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한국계 프랑스인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가 총괄한 음식을 메뉴로 선보인다. 루이비통 측은 "새로운 차원의 다이닝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약은 일찌감치 마감됐으며 일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웃돈을 붙여 예약이 거래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앞서 구찌도 3월 셰프 마시모 보투라와 협업한 이탈리안 컨템포러리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를 서울 이태원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에서 선보였다. 마시모 보투라가 이탈리아 피렌체,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본 도쿄에 이어 연 네 번째 레스토랑. 온라인 예약제인 이 식당은 첫 예약분이 4분 만에 동이 나 화제가 됐다. 구찌 측은 "3월16일 1차 예약을 시작한 후 4월15일자 좌석까지 전 예약분이 4분 만에 마감됐고, 이후 2차 예약 시에는 5월15일자까지 예약분이 3분 만에 끝났다"고 귀띔했다.
김건희 여사가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진 '디올'은 서울 성수동에서 카페를 성업 중이다. 지난달 1일 한시 운영되는 콘셉트 매장을 열면서 다양한 제품군을 비치한 '디올 카페'를 조성했다. 예약 시 방문할 수 있는 디올 카페의 이달치 예약은 이미 마감됐다.
국내에서 주요 명품 브랜드 중 이같은 체험형 마케팅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다. 2006년 플래그십 매장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를 열면서 카페 마당을 운영 중이다. 에르메스 식기에 신라호텔 카페 음식을 담아내 일찌감치 라이프스타일 상품군을 소비자에게 소개했다.
명품 브랜드는 체험형 매장 마케팅과 함께 라이프스타일 상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구와 운동기구 등 주거공간을 채울 아이템을 선보이고 이를 알릴 기회를 만들고 있다.
루이비통은 오는 7일부터 청담동 문화공간 '송은'에서 디자인 가구 단독 전시 '오브제 노마드'를 연다. 루이비통의 국내 첫 디자인 가구 단독 전시로 2012년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의 신작을 관람할 수 있다.
이 브랜드는 최근 몇년간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관련 제품을 선보이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여행용 트렁크’로 시작한 브랜드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난해 국내에 선보인 2억원대 '파티 트렁크'가 대표적이다. 반짝반짝 빛을 반사하는 디스코 볼과 홈바(Home Bar)를 담은 트렁크 수납공간에는 은으로 만든 빨대와 칵테일 셰이커 등이 담겨 있다. 같은해 8월에는 프랑스 자전거 업체 '메종 땅보이트 파리'와 손잡고 3400만원대 'LV 자전거'를 국내에 선보이기도 했다.
디올은 올해 피트니스 전문 브랜드 테크노집과 손잡고 홈 피트니스 컬렉션을 한정판으로 내놨다. 운동복 라인 '디올 바이브'의 연장선으로 트레드밀(러닝머신)과 바벨 등을 출시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명품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라이프스타일 상품군 수요가 늘어난 만큼 각 브랜드가 상품군 확대에 적극 나서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과 함께 명품 수요가 가방 등 패션 아이템에서 인테리어 등까지 확산한 점도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이 명품 이미지를 과거와 같이 가방 등 일부 품목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통합적으로 체험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명품 브랜드의 공세 배경으로 국내 시장 고성장세를 꼽는다. 지난해 '3대 명품' 에르메스(5275억원), 루이비통(1조4681억원), 샤넬(1조2238억원)의 매출은 모두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명품 시장은 세계 7위(지난해 기준 141억6500만달러) 수준으로 커졌다.
명품 시장 고성장은 자산 양극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보복 소비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0~30대의 과시형 소비문화인 플렉스 확산도 거들었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20대의 명품 구입이 두드러지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롯데멤버스가 롯데그룹 백화점·마트·슈퍼·편의점·아울렛·면세점·가전양판점 등 유통채널의 2020년과 2021년 명품 구매건수를 분석한 결과, 20대의 구입건수는 2018~2019년보다 70.1% 뛰었다. 평균 증가율(23%)을 상회한 동시에 전 연령층 중 가장 큰 폭으로 뛴 것이다.
일각에선 자산가치 증식을 이룬 2030세대 '뉴리치’가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몇 년간 암호화폐,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가상자산이나 주식,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크게 늘린 20~30대 자산가들이 늘면서 씀씀이도 커졌다는 얘기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문화적·경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서울이 명품의 '테스트 베드'가 되고 있다. 자산가치 증식과 함께 젊은 소비자의 개인 구매력이 늘어나면서 명품 수요가 확장됐고, 한국 문화 특유의 역동성이 명품 브랜드로 하여금 상품군 확장과 다양한 시도에 나서게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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